런던: 4

Valencia Cafe

by 진메리

Finally,드디어 방에 들어와 씻고 잘 준비를 다 마친 참이다. 아침을 어찌나 일찍 시작했던지 낮이 짧은 런던의 겨울임에도 하루가 길다.


짧게 머문 여행자의 시선에서 런던의 중심부로 느껴졌던 곳은 트라팔가 광장이다. 지도로 보는 윤곽보다 훨씬 개방감이 느껴졌으며 런던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모두에게 '보아라, 당신이 서 있는 이곳이 런던이니라.'라고 말하는 듯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그 유명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전쟁에서 넬슨 제독은 전사하지만 나라는 이 승리자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트라팔가 광장의 한가운데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이것이 국가적 영웅을 기억하고 전투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제국의 방식이리라.


그리고 그 해전에서 공을 세운 다른 하나는 범선 테메레르 호이다. 영국 해군의 자랑거리답게 'The Fighting Temeraire’로 불렸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나중에는 해체를 위해 예인선에게 끌려가게 된다. 윌리엄 터너는 1839년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고 트라팔가 광장 바로 앞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해가 질 무렵의 붉은 황혼빛 속에 거대한 흰색 범선이 떠 있고 그 옆으로 작고 검은색인 증기선이 앞장서서 가고 있다. 아마도 테메레르호를 끌고 정박지로 가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아직 한창이라는 듯 검붉은 연기를 내뿜는 신예 증기선과 돛이 완전히 걷혀 가시 같은 돛대가 드러난 범선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새 시대로부터는 외면받은 과거의 영웅을 향한 작가의 안타깝고 서글픈 감정이 옅은 붓질 하나하나에서 느껴진다.


조용히 해체를 기다리는 테메레르호에서 J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때는 중심 전력이었으나 어느덧 팀을 움직이는 동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작가의 시선이 어떻든 당연한 일처럼 세대교체를 받아들이며 마지막 항해를 하는 테메레르호처럼 J가 힘겹지 않게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길 바란다. 테메레르호는 패배했기 때문에 퇴장하는 것이 아니다. J 역시 그의 은퇴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방식에 맞춰 새로운 역할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테메레르호가 분해되어 통나무 장작이 된다 하더라도 트래팔가광장이 있는 한 빛났던 조국의 승리는 잊히지 않을 것이다. J가 선수로서 지켜냈던 시간의 무게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려서 급하게 썼지만 그림 앞에서 느꼈던 마음을 꼭 기록하고 싶다. 이 감상으로 하루가 더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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