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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Nov 30. 2022

디지털 필터는 절대 못 따라오는 아날로그 필름

필름 카메라 원데이 클래스

 필름에 맺혀 기억되는 세상이 좋다.

필름의 종류나 사용한 카메라에 따라서, 그리고 찍는 사람이 담은 마음에 따라 사진의 온도가 달라진다. 디지털카메라로는 담지 못하는 순간의 감정과 이야기가 필름 사진에는 가득 담겨 나오는 게 좋다. 그런 감성을 따라 한다고 디지털카메라는 ‘아날로그 필름 필터’를 앞다투어 내놓았지만, 비슷한 질감이나 색감은 낼지 몰라도 아날로그 필름의 감성 자체는 절대 흉내 내지 못한다.


 큰맘 먹고 수동 필름 카메라를 산 건 순전히 그 이유였다. 순간을 담아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기억이 필름 위에 고스란히 맺혀 오래도록 남겨지기를 바랐다. 일회용 카메라나 다회용 토이 카메라를 몇 번 사용하다가, 정식 ‘필름 카메라’를 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ㅡ여기에는 친구 D와 G가 자동 필카를 매일 들고 다니던 게 한몫했다ㅡ 카메라를 구매하면서 1회 무료 인화 쿠폰을 받았다.


 이 쿠폰이 필름 카메라 원데이 클래스로 이끌었다. 쿠폰을 쓸 겸 첫 필름을 인화하러 갔던 날, 가게에 붙어있는 ‘수동 필름 카메라 원데이 클래스’ 안내문을 본 게 발단이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계획형인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거나,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무의식 중에 자동으로 실행되는 뇌내 알고리즘이 있다. 우선 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저장하고, 함께하면 좋을 사람을 머릿속으로 탐색한다. 그러고 나서 그와의 만남 주기를 고려해 연락을 취한다.


 보통 떠오르는 사람은 ‘같이 뭘 하자!’고 불러내기에 부담이 없고 흔쾌히 응해줄 사람이다.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가깝고, 물리적으로 너무 멀지 않은 사람. 가장 먼저 떠오른 친구 S에게 연락했다.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한 이유는 별 거 없다.  카메라를 구매하면서 간단한 교육을 들었으니 사용법을 배우는 게 주목적은 아니었다. 휴대성을 고려해 작고 가벼운 목측식 카메라를 구입했는데, 정말 ‘수동 필름 카메라’의 정석 같은 무겁고 예쁜 필름 카메라를 써보고 싶었다. S도 필름 감성을 퍽 좋아하고, 카메라를 살까 고민하던 찰나이기에 타이밍이 매우 적절했다.


  생각보다 벚꽃이 일찍 핀 건지 벚꽃이 한창 떨어지기 시작한,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운 것 같은 봄날이었다. 필름을 끼우는 법부터 초점과 조리개를 조절하는 방법까지. 정말 상세하게 카메라 다루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출사에 나섰다. 저녁에 카메라 가게의 클로즈 시간까지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돌아오면 되는 일정이었다.


 필름 한 롤은 보통 36장이고, 찍어본 사람은 안다. 이 서른여섯 장이 생각보다 많은 양이라는 걸. 그래서 보이는 풍경마다 마음에 들면 조리개를 조절하고,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처음에는 조작이 어리숙해 교육 내용을 정리한 쪽지를 자꾸 열어봤는데, 익숙해지니 마치 오래된 내 카메라 인양 자연스러워졌다.


 풍경을 담고, 함께 한 S를 담고, 마음에 드는 모든 순간을 바삐 담았다. 한 컷 한 컷 소중히 담던 S는 결국 카메라를 반납하기 직전에 부랴부랴 36장을 채워야 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같은 시간 동안 촬영했다면 300장은 더 찍었을 텐데, 필름 카메라로 36장을 찍는 건 생각보다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이다. 그러니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담지 못하는 것들이 담기겠지.


 필름 카메라의 장점은 한 롤을 채워야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필름 카메라의 단점 역시 한 롤을 채워야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찍혔는지, 어떻게 나왔을지 필름을 스캔하고 인화해 받아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은 기대가 되기도, 실망이 되기도 한다. 좀 안 나오더라도 ‘이 또한 추억이지’라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사진이 완전히 날아갔을 때 속상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원데이 클래스나 장기 여행 때 사용한 필름처럼 한 번에 한 롤을 다 찍는 경우가 아니면 바로 사진을 볼 수 없다. 지금 사용 중인 목측식 카메라의 필름은  빠르면 한 달, 보통 2~3달에 한 롤 정도를 촬영하고 인화한다. 빨리빨리 민족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건 단점이지만, 시간이 지나 스캔본을 받아보면 그때 추억이 또 반짝 떠오른다. 잠시 지난 계절의 추억에 젖어 함께 했던 친구들과 그때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우편보다는 톡이나 메일이, 직접 돌아보던 시장보다는 집 앞으로 당일 배송되는 온라인 몰이 점령한 세상이다. 신속 정확한 디지털이 모든 아날로그를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날로그는 건재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고,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졌대도 빈티지 필름 카메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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