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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Nov 18. 2022

가을 끝자락에 마음을 담아

2022년 가을에서, 2021년 가을에게로.

 모든 편지에는 응당 답장을 적어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그게 나로부터 온 편지래도 그렇다. 과거에서 보내온 편지(문득 도착한 어느 가을날의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심경으로 편지를 적어내렸을지, 시간을 조금 더 걸어온 내가 어떻게 살고 있기를 바랐을지… 문득 발견한 편지는 이렇게 다소 생소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 지나온 이야기를, 그리고 살아가는 지금을 전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눈 깜짝할 새 지나온 시간 안에 굳건히 버텼던 너, 나에게.


 2021년의 9월은 날씨가 따가웠다고? 편지 덕에 그때 날씨가 그랬다는 걸 알았어.

놀랍게도 2022년의 9월, 10월도 크게 다르지 않아. 9월에는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날이 뜨거웠고, 10월에는 이제 조금 선선해지나 싶더니 11월인 지금은 대뜸 추워졌거든. 날씨가 점점 요상해지는 모양이야.


 지난날의 나는 인간관계와 커리어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겪었네. 또 ‘그’에 대한 미련에  여념이 없었고. 

1년이 지난 나는 어떨지, 궁금하지? 편지를 열어 본 뒤부터 계속 생각하고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얻은 내 답은, 잘 모르겠어. 

 아, 그래도 한 치의 의심 없이 말할 수 있는 게 딱 한 가지 있긴 하네.

 많이 울고 스스로 상처 내던 과거보다는 덤덤해졌다고.


 인간관계는 다이어트만큼이나 죽는 날까지 고심할 숙제 같아.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구나~ 끝!’ 이렇게 흘려보내는 건 아무리 애써도 잘 안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붙들고 싶고, 싫다는 사람이 있으면 왜 싫어하는지 전전긍긍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사실은 주변에 좋은 사람이 가득한 거. 애인복은 모자라도 인복은 타고난 게 맞나 봐. 회사 동기, 상사, 오랜 친구, …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로 주변이 가득 차 있으니까.


 커리어는ㅡ이러면 안 될 것 같지만ㅡ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어. 이제 막 사원 딱지를 떼는 사정에 지금 위치가 싫지 않고,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돈과 명예에 목표를 두는 건 내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론 지었거든. 가보지 못한 대기업이나 경험하지 못한 기술에 대한 목마름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지만, 일에 있어 추구하는 가치의 갈피를 조금은 잡았어.

 커리어의 이름값으로 올려보는 명예나, ‘이왕이면 대감집 노예’라고 연봉이나, 다양한 기술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능력도 좋지만… 아무래도 삶의 패턴을 유지하면서 일과는 다른 즐거움을 찾아 부유하는 삶이 행복하더라고.


 그래서 결국 ‘그’는 완전히 잊었냐고? 어릴 때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를 지금 자주 못 본다고 해서 절교하는 건 아니잖아. 애인은 ‘기간제 베프’라는 말에 너무 동의하거든. 새로운 단짝이 생겼으니 더 이상 연락도 닿을 수 없는 단짝과는 당연히 훨씬 더 멀어졌지만, 드문드문 떠오르기는 해.

 하지만 그게 더 이상 미련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아.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그가 아무도 만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하지는 않거든. 그냥 함께한 시절에 대한 몽글한 추억과 향수 정도인 것 같아. 잘 살고 있나, 뭐하고 지내나 가끔 안부가 궁금한 그런 사이.


 이로써 직접 경험한 구전 민담이 하나 더 늘었어. 온전한 이별에는 사랑한 시간의 2배만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오롯이 헤어지고 비워낸다는 건 영영 기억하지 못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삭제하는 말도 안 되는 상태는 불가능해 보이거든. 그저 지나 보낸 시간만큼 무뎌져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상태가 맞지 않을까. 지난 시간에 파묻혀서 어쩌다 떠오르고, 가끔은 궁금해도 그냥 사실 자체가 전부인 그런 상태.


 너도 어느 정도 상상했겠지만, 짧은 일 년 새 꽤 많은 사람을 만났어. 왜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스쳐지나 왔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꽤 많아. 때로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혹은 누구를 잊고자 하는 의지로, 아니면 단지 사랑이 존재할 때 다정과 여유가 넘치던 나의 모습이 그리워서. 친구들 사이에서 번번이 안주로 올라와 웃음거리가 된 사람도 있었고, 욕을 잔뜩 먹어서 장수할 것 같은 사람도 있었어. 혹시나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기회가 닿는 대로 만나보고, 대화가 통하는 대로 어울렸으니까.

 그렇게 표류하다가 지금은 또 어느 따뜻한 섬에 정착했어. 이번 정착기간은 얼마나 될지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지만, 꽤 아늑하고 다정이 넘치는 이 시간이 지금으로서는 끝나지 않았으면 해.


 어쨌거나 지금은 내가 제법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해야 하는 공부는 여전히 미뤄뒀고, 일단 일부터 벌이고 수습하는 스스로에게 진절머리가 나지만.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사람 사는 게 마음 같지 않다며 한숨을 거둘 줄을 모르지만. 선로를 이탈하지 않은 채 일상을 잘 살아내고 있고, 일기든 운동이든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고 있으니까.

 넘치게 사랑받으면서, 애정을 주고 다정을 나누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이건 지난날의 나에게 쓰는 편지지만, 앞으로의 나도 이 시간만은 잊지 않았으면 해.

충분히 잘하고 있고, 충만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 시간 말이야.

사랑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 거라지만,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어.

멈추지 않을게, 계속해서 사랑해. 나를!


(Nov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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