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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Feb 07. 2023

AI 보다 더한 인간의 계획.xxxj

김호영 배우님이 EEEE라면, 나는 JJJJ.

 장점이라, 자기소개할 때나 이력서를 쓸 때나 언제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상투적인 항목이다. 그 항목에 적어 넣은 답변은 흔해 빠진 ‘열정’이었다. 두루뭉술하게 ‘열정이 장점이다’라고 하던 것을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세밀하게 다듬었고,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경험 내용만 살짝 바꿔 같은 내용을 썼다.


 ‘제 장점은 열정입니다’라니 재미없어. 어차피 사람 장점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덜 뻔한 표현은 없을까. 온갖 단어로 새까맣게 점철된 머릿속에 친구의 말 한마디가 퍼뜩 떠올랐다.




너 정말 인간 J 그 자체다.


 이거다. 내 장점은 인간 J다. 누구를 만나든 이름이나 나이보다 MBTI를 먼저 묻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계획형 인간에 속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타공인 인간 J다.


 사실 계획은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그렇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먼저 왜 공부하는지 목적과 목표를 정확히 설정한다. 그리고 하루에 얼만큼씩 할지, 배운 내용을 어디에 어떻게 정리할지, 하루 중 언제 할지를 정해 플래너에 적는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업무의 데드라인보다 사흘 정도 일찍 끝내는 일정으로, 언제까지 어느 정도를 마무리할지 시작 전에 미리 다 계획한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한 달 전부터 여행지의 맛집, 카페, 명소, 액티비티 등을 폭풍 검색해 마음에 드는 족족 지도 앱에 담아둔다. 어느 정도 목록이 완성되면 그때부터는 예산을 고려해 실제로 방문할 곳을 정리하고, 동선을 고려해 일정을 수립한다. 일정에 따른 예산안을 작성하고, 이동 수단과 시간까지 미리 확인하고 계산하는 것은 필수다. 심지어 날씨나 컨디션 등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비해 플랜 B, C까지 준비한다.


 평범한 일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 시까지는 집에서 나가야지’, ‘오늘 이 일정 저 일정을 소화하고 이 시간쯤엔 집에 오겠구나’, ‘어디부터 가서 뭘 사고, 배가 고플 테니까 근처에서 밥을 먹고, 빵집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우니까 집에 갈 때 들르면 되겠다’…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게 왜 장점이야?


 흘러가는 대로 무작정 해도 괜찮을 수 있지만, 계획이 있고 짜여진 틀이 있으면 대부분의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벼락치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급하게 시간이나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일하든 놀든 시간을 온전히 취할 수 있다.


 개인 혼자에게만 국한되는 장점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동료들은 허둥대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나와 협업을 피하지 않고, 친구들은 가방만 챙겨 따라오면 되는 여행을 즐긴다. 충분히 자랑할만한 장점이지 않은가.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

 주변에서 혀를 내두르며 하는 질문에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끔은 이런 스스로가 피곤하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온 삶에 만족하고, 머릿속에 ㅡ내 기준에서는 느슨한 생각이지만 혹자가 보기에는ㅡ철저한 계획이 없는 일상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인간으로 살겠노라 다짐한다. 다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살아갈 성향이지만 말이다.




p.s.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장점인 계획과 열정이 삶을 불사르지 않게 단점이 완화한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게으름이다.  열 가지를 계획했다면, 서너 개를 겨우 완수한다. 바쁘게 계획하고 움직이더라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은 장단점의 상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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