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존재가 주는 위안과 기쁨
집에 새로운 식구를 들인 지 2주 정도 되었다. 유명한 카페나 맛집 한편에 꼭 자리 잡고 있는 몬스테라가 그 주인공이다. 한참 여기저기서 핫할 때는 관심도 없다가, 식물을 기르는데 젬병인 사람도 키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민 끝에 들이게 되었다.
딸아이는 집에 꽃이나 화분을 들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물은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 자라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시들어 결국엔 죽는 것을 보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결혼 전부터 키우고 있던 스투키(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고마운 화분)만 거실 구석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아이가 싫어하는 문제를 떠나 나는 식물을 키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분명히 시키는 대로 물을 주고, 열심히 돌봐도 결국엔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요즘엔 얼마나 예쁘고 앙증맞은 식물들이 많은지. 산책길에 나도 모르게 꽃집으로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고 나올 만큼 사랑스러운 화분이 많았다. 그러나 식물도 생명이므로 마음대로 들였다간 나도 아이도 마음을 다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식물을 키우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팬데믹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식물을 키우고 싶어졌다. 남편과 아이가 없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평온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적적했다. 정성을 쏟으며 들여다볼 작은 존재가 필요했다. 최대한 기르기 어렵지 않은 식물로 시작해보자 아이를 설득하고, 몇 개를 고심해서 들인 것이 몬스테라였다.
며칠 동안 열심히 찾아본 끝에, 인터넷의 한 업체에서 마음에 드는 화분을 선택했다. 요즘은 식물도 원하는 수형을 직접 선택해 택배로 배달받는 편리한 세상이다. 혹여나 잎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단단한 포장을 뚫고 만난 몬스테라는 싱그러운 초록을 내뿜고 있었다. 곧 새 잎을 펼치려는 듯 기다랗게 잎대를 말고 있는 모습이 건강해 보여 안심했다.
어항을 바라보며 물멍, 캠핑에서 모닥불을 보며 불멍을 한다는 말이 있듯, 아침마다 햇빛이 제일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조심스레 옮겨 놓고 가만히 바라보는 '식물멍'이 시작되었다. 토토로가 들고 있는 나뭇잎 우산 같이 커다란 몬스테라의 멋들어진 잎을 매만지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래서 반려식물이라고 하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보통 과습으로 식물을 죽게 하는 편이었으므로 물 주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게 하고 햇볕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썼다.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말을 걸어주면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말을 듣고 온 아이는 매일 화분 주변에서 종알종알 지치지도 않고 노래를 부르며 말을 걸었다. 우리는 몬스테라의 신기하고 널따란 이파리를 구경하며 언젠가 펼쳐질 새로운 잎 하나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돌돌 말려있던 길쭉한 대에서 연두색의 매끄럽고 보드라운 이파리가 펼쳐지던 아침. 드디어 얼굴을 빼꼼 내민 새로운 잎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몬스테라 특유의 잎이었다.
"새 잎으로 찢어진 이파리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데 운이 좋았네!"
"진짜? 우리가 잘 돌봐줘서 그런가 봐!"
무럭무럭 자라난 연둣빛 기쁨이 아이와 내 마음에 찰랑거렸다. 온 집안의 공기가 사랑으로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따스한 기운이 아침의 찬 공기로 굳어진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듯했다.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오래도록 새로 태어난 이파리를 바라보았다.
연두색이 초록으로 짙어지고 몬스테라가 거실 한쪽 편에 자신만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몇 번의 해가 뜨고 지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는 나날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여름부터 붙잡고 있던 글 하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새벽 내내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으나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고 좀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나도 모르게 의식하느라 어느 쪽으로 글을 맺어야 하나 고민이 이어졌다. 길고 질긴 밤을 끙끙 앓듯 보내는 나에게 몬스테라는 작은 위로였다. 쓰던 손을 멈추고 곰곰이 이파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다. 조용한 밤엔, 눈앞의 것들을 좀 더 밀도 있게 바라보게 된다. 화분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나는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말없는 존재는 곁에서 수많은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보다 때때로 큰 위안이 된다. 오히려 내 쪽에서 많은 말을 건넬 수 있고, 가장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화분 옆에 앉아 무심히 진심 하나를 툭 털어놓고 일어서고 나면 마음이 담백해졌다.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고, 문장을 모아 글을 완성했다. 완성할 즈음 몬스테라도 자신의 잎을 드디어 세상밖에 보여주었다. 진짜든 아니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몬스테라 이파리 끝에 작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신기해서 들여다보다가 혹시 하고 찾아봤더니 일맥 현상이란다. 애정을 너무 쏟았는지 물을 많이 준 것이 원인이었다. 밤새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잎에 있는 구멍을 통해 밀어내면서 이파리 끝에 이슬로 맺히는 것이다. 밤에 기공을 닫고 잠을 자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앙증맞은데, 스스로 답답해서 물을 뱉어내다니 신기하고 기특하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입이 물러져 누렇게 타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애정을 적당히 쏟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랑을 많이 내어주는 성격인지라 불편한 게 없는지, 잘 자라고 있는지 자꾸만 화분 주변을 맴돌았다. 내게 거쳐갔던 식물들은 실제로 꽤 피곤했었을지 모른다.
어떤 관계가 잘 유지된다는 것은 각자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무한히 애정을 쏟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적절한 여과지가 중간에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마니까. 우리는 모두 서툰 존재들이므로 적절한 시간과 알맞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존재를 돌보는 데에도 수많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배워가는 요즘, 또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나 역시 아주 조금 어른스러워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