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의 두려움과 불안함에 대하여
영화 <듄>은 두려움과 불안에 관한 영화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현재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빼앗기게 될까 봐 불안해한다. 막대한 부와 권력에 대한 탐욕, 자신의 가족과 국가의 평화 등 두려움의 대상은 가지각색이다. 보는 내내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엄마인 제시카와 주인공 폴의 심리다. 정확한 감정을 캐치하기 힘든 두 사람을 중심으로 영화는 앞으로, 앞으로 쉬지 않고 나아간다. 제시카는 자신의 가문 베네 게세리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폴을 낳았지만, 매 순간 흔들린다. 오래 준비한 계획을 성공시킬 것인가, 엄마로서 아들을 지켜낼 것인가. 정체성의 혼란 앞에서 종종 불안을 드러낸다. 그녀는 늘 어느 쪽을 선택할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들 폴 역시 마찬가지다. 예지몽을 꾸며 미래를 예견하는 자로서 조금씩 각성하고 있지만, 어디까지 예지가 가능한지 그 누구에게도 정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모호함이 영화 전체에 깔려 있기 때문에 보는 이를 자꾸만 긴장하게 만든다. 한스 짐머의 독특한 음악 역시 불안을 더한다. 눈으로는 화면을, 귀로는 음악을, 온몸에 자꾸만 끼치는 소름을 느끼며, 모든 감각을 동원해 집중하도록 만드는 굉장한 영화였다.
2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감독은 두려움과 불안 대해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인물들의 시선으로, 화면 곳곳의 여백으로, 심장을 죄여 오는 듯한 음악으로. 8000천여 년 뒤의 시공간을 그리는 영화지만, 인간이 지나 온 역사의 전철을 똑같이 밟기 때문에 보는 내내 소름이 끼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또 현실이 아닌가. 영화의 배경은 미래지만, 놀라울 만큼 현재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중후반 즈음,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자꾸만 팔을 쓸어내리며 진정해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모래 폭풍 한가운데에서 폴은 '두려움에 맞서지 말고 흐름에 몸을 맡겨라'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고군분투하며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던 헬기의 조종대를 놓고 눈을 감고 모래 폭풍 속에 몸을 맡긴다. 그 장면에서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느꼈다. 우리가 동물과 가장 다른 것이 있다면, 생각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나가는 점일 것이다. 본능에 무너지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잊고 있었던 어떤 진실에 눈뜨는 기분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영화 <듄>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생각하라. 행동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움직여라. 흐르는 운명에 몸을 맡겨라.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내라.
영화 <겨울왕국2> 에서도 어디선가 주인공 엘사를 자꾸만 부르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듄>에서 목소리와 꿈이 불안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엘사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자신의 힘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깨닫고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부분 역시 비슷하다. 엘사가 Show your self 노래를 부르며 존재 이유를 알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내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도, 폴이 잔인한 미래를 알면서도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에서 내가 삶의 의지를 느낀 것도 같은 맥락 이리라.
제시카와 폴은 생존을 위해 장엄한 사막에서 몸을 숨기고, 모래에 빠진 발을 빼내며 끊임없이 달린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모래폭풍 안에서 폴이 들었던, ‘운명의 흐름에 그대로 몸을 맡겼을 때 비로소 살 수 있다’는 말의 의미가 와닿았던 이유가 있다. 내려놓아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부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방하착(放下着). 마음속에 한 생각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라는 뜻이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작은 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순응하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내게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삶의 모든 현상은 어차피 일어난 일이며, 두려워하고 회피할수록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혼란, 두려움, 불안, 공포 이 모든 감정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깨달았다. 나는 주어진 인생을 잘 살고 싶었다. 삶의 곳곳에서 자꾸만 나타나는 힘겨움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내고 싶었다. 수없이 넘어져 본 뒤에야 알았다. 나의 삶 한 편에서 글을 발견했다. 글을 쓰며 가장 솔직하고 강한 마음을 지닌 나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다. 종교적인 색채, 시대착오적인 봉건적 발상(원작 소설이 오래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등 모든 것을 떠나 삶에 대한 의지를 말하는 영화의 결이 마음에 든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자기만의 생’을 살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삶에 대한 열정에서 오는 마음의 진동을 느꼈다. 뒷걸음질 치지 않고,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는 폴처럼 나 역시 내 삶을 어떻게든 살아낼 작정이다. 원작 소설은 엄두가 나지 않아 읽을 계획이 없으므로 앞으로 이어질 전개를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다음 편을 기다리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파트 2가 개봉할 몇 년 뒤, 삶을 부지런히 살아낸 나의 모습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부디 스스로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부끄럽지 않게 이만큼 살아냈어. 흐름에 몸을 맡기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불안에 떨지 않으면서. 나 자신의 의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