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단단한 마음으로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고

by 현수진



올해 읽은 에세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단연 양다솔 작가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다. 좋아하는 책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눈물이 난 건 오랜만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날것의 서러움, 분노와 함께 따뜻한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기세에 완전히 사로잡혀 무언가에 홀린 듯 글을 읽어 내려갔다. 밤이면 스탠드를 켜고 어스름한 불빛 아래에서 읽고 또 읽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집에 돌아와 글을 썼다던 책의 띠지에 적힌 추천사는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 역시 몇 문장을 자연스레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오랜 친구 이슬아 작가와 닮아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양다솔의 글은 나의 숨겨두었던 어떤 한 부분을 툭 건드렸다. 절대 감춰지지 않는 나의 태생적인 예민함과 슬픈 마음 같은 것. 엄마와 전철을 타고 오가며 싸우는 장면과, 아빠와 말도 안 되는 이별을 하는 대목에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었으나 마음에선 엉엉 통곡소리가 났다. 우리는 타인이지만 비슷한 결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마도 나만 그녀를 빼닮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와 닮은 부분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이 존재하겠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알았다. 그냥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엄마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그렇게 끙끙 앓았는지. 무엇 때문에 그 글을 여름부터 겨울 초입까지 부여잡고 제대로 써내지 못했는지. 나는 여전히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애증은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삶의 곳곳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수능을 본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 하나만이 반겼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챌 수 있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아빠의 목소리만 기억날 뿐 정확한 표정 같은 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무겁게 입은 연 아빠로부터 오랜 고민 끝에 이혼하기로 했고, 엄마는 오늘 아침 멀리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능을 보기까지 기다린 것은 고3인 나를 위한 배려였겠지만, 그때까지 그들을 괴롭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너무 황당해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수능을 보고 곧 어른이 된다고 해도 나는 열아홉 살 먹은 어린애였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정답이었을까. 이런 건 교과서에도 문제집에서도 본 적 없는 신유형의 문제였다. 입을 굳게 다물고 소파에 앉아 앞으로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질 나에 대해 생각했고, 나의 두 살 어린 동생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가여워졌다.


이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설계도를 그리고 애정으로 가꿨던 우리 가족의 예쁜 집을 뒤로하고 작은 트럭에 최소한의 짐을 싣고 동네를 떠났다. 그날의 서글픔은 지금도 나를 쿡쿡 쑤신다.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그저 슬픔에 차 있던 나와 다르게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 이 집으로 되돌아오겠다 다짐하던 동생은 이별을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렇게 아빠와 동생, 병약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어색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는 작은 원룸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엄마가 없는 집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내 몫의 삶을 꾸려나가려면 장학금이 필수였으므로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 동생의 급격한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아빠의 깊은 한숨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출처- 언플래시


엄마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닿을 곳 없는 원망과 분노가 나를 덮어가고 슬슬 포기하고 있을 때 즈음, 연락이 왔다. 엄마는 생각지도 못한 멀고 먼 작은 동네에 꼭꼭 숨어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가던 길에 동생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셋이 얼굴을 마주친 순간, 엄마도 울고 나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 엄마는 많이 야위었고 지쳐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라고 하기엔 매서운 폭풍 앞에서 자포자기한 한 마리의 작은 어미새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이해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공기처럼 늘 당연히 존재하던 가족, 그것도 부모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세상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나와 동생을 아빠에게 맡기고 멀리 떠나버린 사실만큼은 좀처럼 용서되지 않았다. 그 마음 하나는 지워지지 않고 흉터처럼 마음에 새겨져 내 삶에 동행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를 따로 만나야 한다던가, 만난 사실을 들키면 안 되므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는 것은 자잘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모르던 부모의 모습을 뒤늦게 알게 될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결혼이 뭐고 사랑이 다 무엇일까.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 나니 결혼 같은 건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사랑해서 결혼해도 나의 마지막 역시 헤어짐으로 정해져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구를 만나도 마지막을 생각하면 두려웠다. 지질하고 매달리는 연애를 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용기를 내었으나 상견례와 부모님 동반석, 폐백 사진을 찍는 모든 과정이 어려웠다. 이혼 가정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를 통과하며 우리는 조금씩 혼란스러운 삶에 익숙해져 갔다. 부모의 삶 역시 나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 각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상기하며 살았다. 가끔은 무리하게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삶을 살아낼 수 없었다. 그래야만 덜 아프고 덜 슬프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한동안 미술치료 수업을 열심히 받았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기 전,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도닥이고 싶었다. 수료를 하고 나서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도 어떤 감정은 오래도록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을. 다 괜찮다며 스스로의 감정을 애써 숨긴 적이 많았다. 하지만 어른이어도 마음이 아플 수 있고, 아파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 아주 조금 괜찮아지기까지 소파에 앉아 있던 열아홉 그날의 시간으로부터 십 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아득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담담해지기까지 또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을까. 하지만 여전히 난 그날의 장면을 떠올릴 때면 조금 울컥하게 된다. 이 마음은 어쩌지 못하고 부유하듯 떠돌며 삶을 살던 나의 인생 여러 곳에 존재하고 가끔씩 글을 쓰다가 울게 되는 나의 문장 곳곳에 숨어 있다.


양다솔 작가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그녀의 글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평생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글 어느 부분에 그날의 장면을 넣어야 좀 더 담백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글쓰기를 시작하며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이 글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묵혀 둔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든다. 나는 앞으로 좀 더 솔직하게, 자유롭게, 단단한 마음으로 좀 더 많은 것에 대해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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