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한 뒤, 나는 인류가 만들어 낸 수많은 전자제품 중 블루투스 키보드의 휴대성에 대해 감탄하며 사용 중이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자니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다. 수다 떠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다 보면, 종종 난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 참에 아날로그로 돌아가 볼까 싶어 펜을 들고 끄적여보지만 손이 아프고, 마음에 쏙 드는 다이어리나 펜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기에는 좀 피곤한 타입일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글쓰기를 잠시 미룰 이유를 열심히 찾는 것일지도. 어쨌든 최대한 심플하고 편안한 방법이 필요했고, 그래서 발견한 것이 바로 블루투스 키보드다. 가방에 키보드를 넣고 집을 나서면 나는 어디서든 순식간에 글 쓰는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카페는 물론, 여행을 가도 든든하다. 잠깐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휴대폰과 키보드를 연결해 많은 것을 쓸 수 있다. 심지어 집에서도 집안일을 하다 말고 노트북을 여는 대신 키보드로 떠오르는 많은 문장들을 기록해 둔다. 올해 나의 애정과 신뢰를 듬뿍 받은 최고의 물건이라 하겠다.
나는 지금 동네 도서관의 아주 구석진 장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시계의 긴 바늘이 오후 2시를 슬그머니 지나 느릿느릿 움직이고 사방은 조용하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저 멀리 책을 정리하는 사서의 카트가 굴러가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커다란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그 누구도 내가 여기에서 글을 쓰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곳. 잠시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이 괜스레 묘하다. 이곳에 나의 몸을 비밀스럽게 숨기고, 아이의 학원 수업이 끝나기까지 남은 한 시간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휴대폰에 키보드를 연결해 마음 가는 대로 아무 말이나 쓰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요동치는 감정을 가다듬는다.
글쓰기 이전에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더라. 습관처럼 도서관으로 미끄러져 들어와도 언제나 어린이 코너의 그림책을 먼저 살펴보기 바빴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 꼼꼼히 읽어보고, 그중 몇 개를 추려내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저절로 하아 하고 한숨이 나온다. 내가 쓸 수 있는 하루치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기분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며 기뻐하는 아이를 보는 건 행복하지만, 이제는 내게 주어지는 작은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쓰고 싶어졌다. 1분 1초가 아쉽고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많은 책을 읽고, 무엇이든 부지런히 쓰고 싶었다.
물론 언제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게 집안일을 하느라 좀처럼 다른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그런 날은 글쓰기는 일단 덮어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최선이다. 마치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처럼. 애쓰며 하루를 사느라 종종 방전이 된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성능이 떨어진 휴대폰이 완충이 잘 되지 않아서 수시로 충전을 해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시간이 없으면 엄마, 아내, 글 쓰는 사람으로 조화롭게 삶을 꾸려나가기 곤란할 것이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으면 책을 읽어도 눈에서만 머물다 이내 흩어져 버린다. 글을 쓰려고 앉아도 몇 문장 쓰다 말거나 마무리 짓지 못하기 일쑤다.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는 것, 과감히 멈추고 기분을 전환하는 것. 이것이 글쓰기를 지속하기에 필요한 방법 중 하나임을 배워가고 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면, 노트북을 완전히 끄고 밖으로 나선다.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를 타거나 계획 없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불쑥 버스에 올라타기도 한다. 나는 집보다는 확실히 카페나 도서관, 여행과 산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그렇게 얻은 소재와 단어, 문장들을 기록해두었다가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글을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나에게 맞는 장소와 시간대, 환경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되도록 자주 장소를 바꾸거나, 마음에 드는 공간을 부러 찾아가 오래 머물기도 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고, 발길 닿는 대로 걷는 행위 그 자체에서 위로를 받는다. 조금씩, 천천히 스스로에 대해 한 뼘 더 알아간다. 아, 난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취향을 발견하고, 기쁨을 만들어가는 일은 글쓰기를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구나 깨닫게 된다.
정해진 주제도, 대가도 없이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제대로 써내는 것은 매번 어렵고 쉽게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다. 과연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란 사람에게 재능이 정말 있을까. 의구심이 나를 예고도 없이 덮칠 때면 타닥타닥 장작 소리를 내기를 기다리며 식탁 끄트머리에 얌전히 자리 잡은 블루투스 키보드와, 오후 2시의 도서관 구석자리와, 길고 긴 산책길에 바스락 거리며 밟히던 낙엽과 기분 좋은 햇살 같은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되도록 오래 이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며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소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