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이었다. 에세이 수업 과제를 위해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책을 공들여 읽었다. 굉장한 흡입력을 지닌 단어와 문장이 영롱하게 빛나는 책이었다. 머리말을 읽은 순간부터 어질 했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소름 돋을 수 있나 감탄하며 책장을 넘겼다. 어떤 문장 앞에서는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오들오들 몸이 떨리기도 했다. 살아있는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작가의 단어와 문장을 모아두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책을 읽을수록 이 엄청난 대작가를 매섭게 질투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고작 일기 같은 글 몇 자 적어본 것이 전부인 내가 어째서 이런 감정을 품는 것인가. 무례하다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화딱지가 났다. 이런 글을 써낼 수 없으면 글 쓰는 사람은 절대 될 수 없는 걸까 하는 마음에 괜히 심통이 났다.
열병을 앓는 듯 몽롱한 일주일이었다. 작가가 평생 품고 살았을 고통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얽혀 낮인데도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미치도록 존경스럽다가도 나라고 이런 글 못쓸게 뭐냐며 되지 않는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심보였다. 그 며칠간 나는 아무 글이나 마구 쓰기 시작했다. 마치 토악질을 하는 것처럼 몸 밖으로 글을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정신없이 쓰다 배가 고파지면 싱크대 앞에 서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맨밥을 욱여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고 기묘한 일주일이었다.
허기짐이 분명했다. 나는 굶주려 있었다. 쓰기 위해 내 몸에 많은 것을 열심히 채워 넣어야 했다. 글을 씀과 동시에 미뤄두었던 책을 쌓아두고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시작하니 봇물 터지듯 이런저런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손이 이끄는 대로 수많은 문장을 썼다. 쓰다 지치면 소파에 널브러져 책을 읽었는데, 읽으면 또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좋은 문장을 필사할 때면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온몸 구석구석에 쌓여 있던 단어와 문장이 사방으로 팝콘이 튀어 오르듯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멈출 수도 없고, 멈춰지지도 않았다. 일어섰다가도 금방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썼고, 밖으로 나가려다가도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떠오르는 모든 문장을 하얀 여백에 새겨 넣었다.
많은 작가들의 신선한 단어와 문장을 마치 맛있는 한 끼를 먹듯이 정성스레 씹고 또 씹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짐의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 허기짐은 박완서 작가의 책을 세 번쯤 더 읽어서야 끝이 났다. 작가의 삶, 나의 어머니의 삶, 나의 삶을 교차하며 되돌아보는 순간 비로소 멈추게 되었다. 내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할지 어렴풋하게 느낀 것도 그 순간이었다. 그 더운 여름의 일주일, 무엇이 그렇게까지 나를 치열하게 쓰게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쓰기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 내 몸에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넘칠 때까지. 나는 많은 것을 쌓아두었다가 그것을 터트리는 글을 쓰는 사람인 모양이다. 견딜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이 꽉 차올라서야 쓰기 때문에 써 내려가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나에게는 글을 쓰는 명분이 된다. ‘어떻게든 써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명분.
누군가 자신을 이끄는 듯한 기분으로 글 쓰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몇몇 작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지난여름 알게 되었다. 어딘가 글쓰기의 뮤즈가 실제로 있다면, 내 손을 빌어(혹은 내 손을 조종하여) 이 하얀 눈밭 같은 컴퓨터 화면에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실컷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쓴다.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글쓰기 수업이나 책에서 지겹도록 나오는 말이다. '일단 쓴다’가 전제가 되어야 그다음 글쓰기가 이어진다. 이것을 단순히 알고 있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은 다른 차원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 쓰기 이전의 나와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는 평행선을 걷는 것처럼 끝끝내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 두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므로.
매일 쓰는 사람은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목 뒷덜미와 허리의 뻐근함, 손목의 시큰거림,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을 무수히 견디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글쓰기에 대한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을까. 그 여름의 몽롱한 기분이 문득 그립다. 되도록 자주 글쓰기의 뮤즈가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오늘도 나는 책을 맛있게 씹고 뜯고 즐기며, 이렇게 또 하나의 글을 쓴다. 쓰는 사람으로 사는 또 한 번의 하루를 만들어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