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의 고요함
한때 모닝 페이지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다. 모닝 페이지란 새벽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생각들을 A4 세장 정도의 분량으로 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과정을 말한다. 야행성에 불면증까지 있던 내가 새벽에 일어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변화가 절실했다. 일찍 일어나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리라 생각하며 새벽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맞췄다. 멍한 상태로 물 한 컵을 들고 바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써 내려가는 것이 내가 쓰는 모닝 페이지의 전부였다. 누가 읽을 일이 없으니 퇴고도,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트에 부드러운 연필로 자유롭게 써 내려가며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편 직업의 특성상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정착을 결심하고 2년 전 남편 고향 근처로 이사를 왔지만, 코로나가 급격히 퍼지기 시작했다. 유치원을 가지 못하게 되자 아이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엘리베이터만 타도 바이러스가 덕지덕지 달라붙을 것만 같아 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웠다. 거대한 파도 같은 두려움에 온 몸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듯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에 속수무책이었다. 집 앞 유치원을 지날 때마다 나는 언제쯤 여기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짠하고, 엄마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바뀌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걸까? 책을 읽고 전문가의 이야기를 찾아들어도 뾰족한 답은 없었다. 아이와 집에 고립되어 있을수록 점점 가라앉는 스스로를 발견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불면증은 더욱 심해져 눈뜬 채 아침을 맞는 일이 잦아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상상을 덧붙이며 종종 좋지 않은 결론을 내렸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내가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이와 함께 구경 간 서점 진열대에서 우연히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만났다.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이라는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안을 들춰보니 내면의 창조성을 키우는 도구로 글쓰기를 선택한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기분 전환이 될까 싶어 바로 책을 사서 돌아와 집중해 읽었다. 좀 더 알아보니 SNS나 블로그에서는 이미 모닝 페이지를 시작한 사람들의 후기가 잔뜩 있었고, 그들의 글을 읽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다음날 새벽부터 바로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모닝 페이지의 시작이었다.
모닝 페이지를 쓰던 첫날이 떠오른다. 책상에는 앉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유선 노트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이후 일기는커녕 긴 글을 써본 적이 없으니 막막한 건 당연했다. 세장이나 꽉 채워야 한다는데 어쩌나 싶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라는 문장이 내 모닝 페이지 첫 글의 첫 줄이었을 것이다. 너무 잘 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단 아무 말이나 쓰기로 했다. 어차피 다시 읽지 않고 덮을 예정(모닝 페이지는 쓰고 난 이야기를 다시 열어보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이니 거리낄 것 없이 써보자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잡은 연필의 감촉은 생소했고, 몇 번이나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대로 노트를 덮고 다시 잠이나 잘까 싶었으나 꾹 참고 정해진 분량을 어떻게든 쓰려고 애썼다. 온몸에 힘을 주고 쓰다 보니 마지막엔 뒷목과 등, 연필을 잡은 손이 너무 아팠다. 내일 이걸 또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매일 쓴다고 정말 달라지는 게 있는 걸까. 어쩌면 나는 서점 마케팅에 홀랑 속은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 덩달아 따라 하는 게 아닌가 글을 쓰는 내내 복잡한 마음이 이어졌다. 서투른 모닝 페이지는 며칠간 이어졌고, 일어나지 못해 건너뛰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한 달은 버텨보자 다짐하고 아이와 함께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났다.
모닝 페이지에 익숙해질수록 나만의 루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 한 뒤, 물을 마시고 바로 책상에 앉는다. 휴대폰을 보지 않고 바로 노트를 펼쳐 글을 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심플한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정을 나열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조금씩 솔직한 마음들을 자연스럽게 쏟아내게 되었다. 풀리지 않는 고민이나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다가 마지막엔 부드럽게 다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 반복하다 보니 여유가 생겼고,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아침을 열게 되었다. 잔잔한 노래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잠을 깨거나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모닝 페이지를 마치는 속도가 빨라져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게 되었다. 미뤄두었던 책을 읽는다던가,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조금씩 나눠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뿌듯함이 몰려왔다. 집집마다 하나 둘 켜지는 창가의 불빛을 세며 누군가의 하루를 상상하기도 했다.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나는 살아있구나, 죽어있지 않았구나. 내가 책상에 앉아 작은 불빛을 켜놓고 글을 쓰는 동안 모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구나. 서로 거리두기를 하고 되도록 마주치지 않고 있지만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 역시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주는 기쁨은 그렇게 내 인생 곳곳에 스며들었다. 새벽이 주는 고요함과 적막함, 그리고 완전한 자유 덕분에 조금은 숨 쉬고 살 수 있었다. 무엇이든 경험해 봐야 안다는 말은 진리다. 일단 시작해야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도 절절하게 실감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달콤한 시간을 실컷 누리다 보면 아이가 엄마아아아 하며 거실로 달려 나온다. 소파 한편에 누워 남은 잠을 청하는 아이의 뒤를 이어 남편도 부스스 일어나 안녕 인사하며 출근 준비를 한다. 나의 시간과 가족의 시간이 만나는 순간이다. 나에게 집중하고 난 뒤 가족을 만나니 조금씩 일상의 밸런스가 맞는 기분이 들었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 쓸수록 예민함이 줄어들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관대함이 생겼다.
이 글을 쓰는 시간 역시 새벽 다섯 시 오십 분이다. 자다 깨서 뭐에라도 홀린 듯 거실로 나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득 책장에 꽂혀 있던 물건에 눈길이 갔는데, 바로 2년 전 봄부터 여름까지 썼던 모닝 페이지였다.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노트를 오랜만에 열어보니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하여 오늘 이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며 나는 또다시 고군분투 중이다. 슬프게도 코로나는 여전하고, 확진자는 그 시절보다 훨씬 늘었고, 모든 것은 더욱더 불확실해졌다. 그러나 반대로 나의 마음은 훨씬 단단해졌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글을 쓰다 보니 조용히 책상에 앉아 나와 만나던 수많은 새벽들이 그리워진다. 내일부터 다시 일어나 볼까. 다시 한번 모닝 페이지를 쓴다면 또 어떤 이야기로 빈 공간을 채워 나갈까. 2년 전 서점에서의 그날처럼 새로운 호기심이 마음에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