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 사이의 부드러운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적당한 온도의 공기가 상쾌하다. 분주한 저녁 시간을 마무리하고 쓰레기를 버릴 겸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낮과 달리 밤은 자주 보지 못하는 것들과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갑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와아 하고 절로 감탄이 나온다. 까만 하늘에 하얀 손톱 같은 달이 예쁘게 떠 있었다. 보름달이나 반달은 종종 봤지만 초승달은 오랜만이다. 달을 보며 잠시 걷는데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초승달같이 하얗고 얇은 손톱이 자라난 작은 손과 그 옆에서 잔뜩 긴장한 채 신생아용 가위를 들고 막 손톱을 자르려는 남편과 카메라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촬영하려 집중한 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첫 손톱을 자르며 파르르 떨던 초보 엄마 아빠의 어떤 늦은 밤. 아이의 손끝에서, 옹알이에서, 까르르 웃는 웃음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사랑을 느끼던 순간.
딸이 태어난 뒤 펼쳐진 모든 순간은 경이로움과 당황스러움, 어려움과 기쁨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하며 울고 웃었다. 매일 행복했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 답할 것이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부모가 된 우리는 미성숙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삐뽀삐뽀 119 책과 인터넷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사랑스럽지만 너무나 예민한 작은 생명체 앞에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행복과 설움 사이를 오가며 널뛰는 감정 앞에서 종종 무너졌고, 남편은 육아를 도우며 이직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잔뜩 날이 선 우리에게 매일이 살얼음판 같았음은 당연했다.
사랑했기에 결혼을 선택했지만 육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점점 대화를 잃었고, 서운함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눈처럼 자꾸만 쌓여갔다. 폭풍 전야처럼 조용히 참고 있다가 갑자기 서로를 향해 폭발할 때도 많았다. 나에게 이렇게까지 못된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앙칼지고 못된 말을 쏟아내고, 후회하고, 화해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의 가장 밑바닥을 본 사람은 인생 통틀어 남편이 유일할 것이다. 연애 시절, 서로를 소울메이트라 칭하며 누구보다 상대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믿었으나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영문 모를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으나 그래도 남편이 있어 좋았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울퉁불퉁하고 모난 부분을 잘 다듬어 부드럽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남편임을 살면서 자주 깨달았다. 덜렁거리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때때로 저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나를 다정한 목소리로 붙잡아 주는 사람.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든 응원을 먼저 해 주는 사람. 아이를 키우며 고민할 때마다 너는 좋은 엄마라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내주는 사람. 불완전한 우리가 사랑스러운 아이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차근차근 자란 것이 분명했다. 뾰족한 말로 상처주기 바빴던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배운 것도 모두 결혼 이후다. 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운다.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 외치던 내가 혼자 살아갔다면 절대 배우지 못했을 귀하고 소중한 마음들.
늘어가는 새치를 발견할 때, 주름 지고 처지는 나잇살을 발견하며 서로를 놀릴 때,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자꾸만 마음이 짠해질 때면 우리의 처음을 다시금 떠올린다. 5월에는 수많은 가족 행사가 있지만 우리의 첫 시작, 결혼기념일이 있다. 올해는 남편 손을 잡고 밤 산책을 해야겠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고운 편지지에 담아 선물하려 한다. 손톱달 아래에서 걷다가 울컥하던 밤이 있었다고. 문득 바들거리던 손으로 손톱을 자르던 남편이 떠올라 혼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못된 내 옆에 단단히 서 있어줘서 그저 고맙고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