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영원한 어린 왕자, 아니 어린 악동.
발달장애를 가진 자폐성 장애인 동생이 있다.
마음이 아프든, 몸이 아프든, 아픈 가족이 있다는 것은 결코 럭키!는 아니고.
바사삭 쿠키쯤 되는 것 같다.
키 180에 마음은 4살인 내 동생은 "선물 뭐 갖고 싶어?"라고 물으면 생일이든, 크리스마스든 항상 외친다.
"쿠키!"
그래서 함께 쿠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1. 준비하기
쿠키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비싼 오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또 밀가루도 그냥 밀가루 대신 박력분, 혹은 중력분이 필요하다. 집에 쉽게 갖고 있지 않는 베이킹파우더와 무염버터도 필요하다. 쿠키에 필요한 재료를 정리해보면, 오븐. 중력분, 베이킹파우더, 무염버터, 달걀, 설탕, 그리고 소금 한 꼬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쿠키를 만들고 싶으냐에 따라 초코칩이나 아몬드, 건포도와 같은 토핑도 필요하다.
아픈 가족이 함께 잘 살아가려면 여러 환경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희생, 가족의 시간, 그리고 비싼 돈.
이렇게 여러 환경이 갖춰져 있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래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시간을, 환경을. 그래야 가족이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다.
2. 재료 섞기
미리 버터를 상온에 내어 놓아 부드럽게 만든다. 이런 버터에 거의 1대 1의 비율로 설탕과 섞는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 나는 설탕을 조금만 넣었다. 그러면 아주 건강한 맛이 나는 맛없는 쿠키가 된다. 그러니 달달한 맛있는 쿠키를 생각한다면, 설탕에 버터를 1:1로 넣고 잘 저어준다. "설탕 알갱이가 안 느껴진다!" 할 때까지 잘 휘젓는다. 여기에 계란 한알을 넣고, 소금 매우 조금 한 꼬집을 넣어 다시 힘차게 저어준다. 그리고 중력분을 넣고 베이킹파우더도 한 꼬집 넣어준다. 중력분은 지금까지 재료만큼의 양을 넣어준다. 그러니까 버터를 한 주먹 넣었다면 설탕도 한주먹, 그리고 중력분은 두 주먹 조금 안되게 넣는다. 그리고 잘 저어준다. 쿠키를 만들 때는 여태껏 만든 다른 얼렁뚱땅 레시피와는 다르게 비율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번 만들어진 반죽으로 구워버린 쿠키는 맛을 돌이킬 수 없다. 잘못 만들어진 반죽은, 바사삭 깨져버리고 버려진다.
아픈 가족이 있다면, 다른 가족들의 희생과 노력의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한다.
여기서 조금만 어긋나 버리고, 밸런스가 무너져 어느 한 명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 가족은 각자의 이유로 힘들어질 테고 지쳐갈 것이다.
그러다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할퀴게 된다.
그러다 결국 부서진다.
장애를 가진 가족과 살아간다는 건 쿠키 반죽만큼 하나로, 환상의 비율로 잘 섞여야 한다.
잠시 잠깐이 아닌 평생에 이르러야 하는 긴 시간이다.
이때 가족들의 역할 분담, 돌보아주는 시간,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배려가 중요하다.
단, 한 가지의 문제는. 나는?
나조차도 커가는 어린아이였다는 점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도 하나의 구성원이 되어 한 덩어리가 잘 되어갔다.
가끔 삐딱선은 탔어도.
3. 토핑 넣고 반죽 재우기
색이 예쁜 쿠키를 만들고 싶으면 식용 색소를 넣어도 되고, 달달한 초코칩 쿠키를 만들고 싶으면 초코칩을 섞어 저어주면 된다. 나는 아몬드를 갈아 넣었다. 동생은 초코칩을 원했지만. 아몬드도 넣고 건블루베리도 넣었다. 왠지 건강한 느낌을 바라며.
재료들을 넣고 반죽을 20-30 분 정도 냉장고에 둔다.
4. 모양 잡기
모양은 엄~청 다양하다. 너무 묽으면 짜는 주머니에 넣어 뱅글뱅글 돌려 모양을 잡아주면 된다. 아니라면 밀대로 얇게 펴서 모양 틀로 찍어 주어도 된다. 짜는 주머니도, 모양 틀도 없다면? 손으로 만들면 된다. 하트 모양, 별 모양. 여기 위에 아몬드나 초코칩을 콕콕 박아 모양을 내기도 한다. 쿠키 모양은 순간순간마다 너무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렇게나 모양을 내면 된다.
장애 형제를 가진 다양한 가족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공통점이 하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양이다.
장애 형제에 대한 비장애 형제들의 마음도, 과한 애정부터 극도로 싫어하기까지 다양하다.
가족들의 모습도,
아픔을 앎과 동시에 생업을 포기하며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에 모든 걸 바치는 가족부터,
아프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가족에 이르기까지.
어떤 모습도 같지는 않지만 어차피 구워지면 쿠키라는 것은 같다.
가족들도 그렇다.
그들이 어떠한 모습이든 힘들 것이라는 것.
5. 굽기
오븐을 미리 예열해놓는다. 170°C쯤. 여기에 쿠키를 넣고 170도에서 15분에서 20분 정도 굽는다. 오븐에 작은 유리가 달려있는데 수시로 보면 된다. 까맣게 타지 않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맛있는 냄새는 덤이다.
장애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사실 인고의 시간들이다.
마음이 크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백번, 만 번 가르쳐가며 조금씩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모두 인내와 섬세함이 필요하다.
쿠키의 온도 조절처럼.
쿠키가 구워질 때까지 열 번도 더 쳐다본 것처럼.
그렇게 섬세하게 아픈 가족을 돌본다.
6. 완성 그리고...
맛있는 쿠키가 완성되었다. 맛있게 먹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잘 나누어 먹으면 된다.
설탕을 조금 덜 넣고, 아몬드를 넣은 나는 조금은 맛없는 건강한 쿠키가 완성되었다.
난.
내 동생을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이 마치 맛없는 쿠키를 나눠주는 것과 같았다.
줄까? 말까? 수십 번은 고민한 쿠키 선물만큼.
언제 주지? 수없이 타이밍을 보듯.
지금쯤 동생이 아프다는 걸 말해 야하나?
굳이 말할 필요 있나?
고민해가며 조심스레 소개했다.
맛없는 쿠키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크게 나눠보면 두 가지였다.
"맛있어!! 건강한 맛이야! 고생했겠다. 선물해줘서 고마워"하는 사람과
"이게 뭐야? 되게 맛없다. 다음부턴 마음만 받을게. 근데 뭘로 만든 거야? 이건 뭐야? 어떻게 만든 거지?" 하며 고마움 보단 호기심과 실망감을 표현하는 사람.
"힘들었겠구나. 이런 이야기 내게 해줘서 고마워." 하는 친구와
"음... 그래? 아.... 그래서.. 네가.. 그랬구나ㅋㅋ. 아 아니야. 근데 혹시 유전되는 건 아니지?" 하는 친구.
더 어릴 땐 "얘 동생 바보래요!!"라는 소리도 들어봤지만.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담긴 쿠키를 선물한다.
아픈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어렵고 무겁다.
쿠키로 가볍게 이쯤까지 썼지만.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그들에게 그리고 쿠키를 선물 받은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맛있든 맛없든. 조금 탔어도 삐뚤빼뚤한 모양이래도 누군가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소중한 쿠키야!
맛있게 먹어줘♡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사고 치고 있는 귀여운 악동. 돼지. 영원한 어린 왕자와 행복하게 쿠키를 나눠먹고 있다.
누나도 나눠줘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