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하는 요리
우리 가족은 참 소풍을 좋아한다.
알록달록 김밥을 사 가지고 가기도 하고, 전날부터 우당탕 준비해 싸가지고 가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소풍'하면 단연 '김밥'은 연관 단어였다.
요즘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집집마다 다른 레시피로 다른 맛을 내는 김밥을 서로 내놓고 나눠먹었다.
김밥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유부초밥을 싸오기도 하며.
그때마다 우리 집 김밥은 베스트였다.
작고 맛있는 김밥.
지금도 우리 가족은 소풍을 자주 간다.
내가 성인이면 어때?
부모님이 환갑이면 어때?
함께 김밥 싸서 캠핑의자 펼쳐놓고 바다에서 먹고 있노라면
'행복이 이거지.' 싶다.
점점, 소풍에 최적화된 날씨가 사라지는 것 같아 슬프지만.
이번 주말도 김밥을 싸서 나가야겠다.
요새는 캠핑족들이 많아 자리가 마땅치 않을 때가 많지만,
어디든 앉으면 그곳이 소풍이지.
김밥을 싸기 위해선, 어렵진 않지만 손이 참 많이 간다.
먼저 김밥에 재료들은 전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취향에 따라 격렬히 호불호가 나뉘는 오이. 그리고 미리 만들어 놓거나, 사도 되는 우엉조림이 있다.
오이는 깎아서 길게 썰어 하루 전날 소금에 재어 놓는다. 다음날 씻어서 물기를 꽉 짜내어 써야 한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재어두면 너무 짜다. '오이가 소금에 좀 많이 버무려졌다.' 싶을 만큼 넣고 조물조물해서 하루 정도 상온에 둔다. 저녁에 만들어서 아침에 쓰면 된다.
우엉은 껍질을 깎아 잘게 채를 썰어 식초물에 잠시 담가 둔다. 채를 써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채를 써는 동안 식초물에 담가놓으면 좋다. 식초물에 담가놓는 이유는 아린 맛을 없애기 위해서라더라.
10-20분 정도 식초물에 담갔다가 물로 씻고 프라이팬으로 직행한다.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우엉의 물기가 날아갈 때까지 볶아 준다. 물기가 다 날아갔으면 여기에 물, 간장, 올리고당, 다진 마늘 살짝, 참기름 살짝을 넣고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볶아진 우엉에 넣어 조린다. 우엉이 차박차박 잠길 정도로 물을 맞추고 여기에 까맣게 될 만큼 간장을 넣는다. 올리고당은 우리 가족은 단 걸 좋아하지 않아 조금만 넣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자주 들여다 보아 우엉이 까맣게 색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 졸여준다. 중불이나 약불에서. 중간중간 물이 닳아지면 물도 더 넣어가며. 이 우엉조림도 미리 전날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달걀도 넉넉히 사두고, 단무지, 햄 등 김밥 속재료를 미리 준비한다.
어제 소금에 재어둔 오이를 한번 헹군 후 물을 있는 힘껏 짠다. 물기가 하나도 없을 때까지 있는 힘껏.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은 우엉도 꺼내놓고, 단무지도 꺼내 흐르는 물에 한번 씻는다.
달걀은 풀어 넓게 프라이팬에 둘러 지단을 만든다. 다 익은 달걀은 김밥 길이만큼 길게 길게 썰어준다.
햄도 타지 않게 조심하며 살짝 볶아준다.
제일 중요한 김도 살짝 구어 준비한다. 김은 꼭 김밥용 김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옆구리가 자꾸 터진다. 구멍이 숭숭 난다.
이제 밥을 준비해야 한다.
밥은 이제 막 한 하얗고 뜨끈한 밥에 참기름과 소금을 미리 종지에 풀어놓았다가 섞어준다.
너무 치대면 밥이 떡처럼 되니까 살짝살짝 후후 섞어준다.
모든 재료를 나를 중심으로 쭉 늘어뜨려 놓는다. 순서대로 딱딱 집을 수 있도록.
김밥의 맛의 차이는 사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집집마다 맛의 차이가 재료에서 나는 것 같다.
내가 써놓은 재료를 보면 햄, 단무지, 오이, 우엉, 달걀이다.
우리 집은 당근을 넣는데? 우리 집은 맛살을 넣는데?
하는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이게 집의 개성이고 차이이다.
전체 틀은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제각각인 구성원들의 차이.
그 개성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집의 다른 분위기와 맛.
김밥은 싸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
쉬워 보여도 잘 말아지지 않을 때도 있고, 옆구리가 터질 때도 있다.
사이가 벌어져 썰고 나면 재료들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다.
먼저 김발을 밑에 깔고 김을 올린다.
밥을 한주먹 집어 넓고 얇게 펼쳐준다. 꼭 얇게 펼쳐야 한다.
앞에 공간을 살짝 비워두고 재료를 차곡차곡 놓는다.
꾹꾹 눌러서 놓아야 한다.
다 놓았으면 끝에서부터 꾹꾹 눌러가며 말아준다.
나는 끝에 비워둔 공간을 먼저 말고 재료도 둘둘 말아버린다.
김발은 말고 나서 다시 돌려 말아 꾹꾹 누르며 사용한다. 빠지지 않게.
김밥을 마는 기술은 사실, 몇 번 해보야 한다.
본다고, 안다고 해서 쉽게 말리지 않는다.
혹시 끝에 김이 잘 안 붙는다면 물을 손가락에 살짝 발라 붙여주면 된다.
가족도 각각 개성이 강한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많은 시간과 압력들에 의해
떨어지지 않는 하나의 가족이 된다.
김밥을 말았다면 겉에 참기름을 휙휙 발라 주고 깨도 솔솔 뿌려준다.
김밥을 써는 칼은 무뎌서는 안 된다.
잘 갈아진 날 선 칼로 한 번에 베어야 김이 터지지 않는다.
예쁘게 잘 썰어 도시락 통에 잘 담으면 된다.
끝이 삐죽삐죽 삐져나온 꽁다리와 옆구리 터진 김밥을 먹는 재미가 참 솔솔 하다.
김밥은 만드는 과정보다.
완성된 김밥이 참 가족 같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울타리 김.
그 안을 포근히 재료들을 감싸고,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다 막아내는 하얀 밥.
그리고 올망졸망 모여 다양한 색을 내고 있는 재료들.
꼭 김과 밥은 아빠 엄마 같고, 형형색색 다양한 재료들은 아이들 같다.
(김이 아빠고 밥이 엄마라는 보장은 없다.
때때로 포근한 밥이 아빠이기도 하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김이 엄마이기도 하다.)
김이 없어도, 밥이 없어도 김밥이 되기도 한다.
누드김밥도 있고, 요새 밥 대신 달걀과 같은 것들을 넣는 키토 김밥도 있다.
김대신 감태로 만든 김밥도 있고.
다양한 형태의 김밥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 만큼이나 많다.
새로워 보이지만 그들도 김밥이고, 그들도 가족이다.
이렇게 만든 가족과 같은 김밥을 가지고
부모님, 형제와 함께 가는 소풍.
목적지를 정하다 의견이 안 맞아 싸울 수 있다.
김밥을 먹기도 전에 싸워 돌아올 수도 있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또 웃으며 김밥을 먹을 거다.
이번 주말, 어디로 떠나볼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부모님 손을 잡고 떠나는 소풍도 참 재미있다.
그래서 산?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