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생이 아팠다. (발달장애의 동생처럼) 우리 특별한 형제들은 아파도 전조증상을 알기 어렵다. 아파도 아프다고, 어딘가 불편해도 불편하다고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을 키웠다. 아마도 많이 불편했을 텐데 몰랐냐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이 식은땀을 흘리고 참을 수 없이 아파 '병원'이라는 단어를 말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동생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수술적 치료가 필요했다. 수술로 인해 입원기간은 3일~4일로 예상되었다. 동생의 수술과 입원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아마도 3살짜리 어린아이를 입원시켜 수술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쉽게 예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몸은 이미 성인이라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라면 붙잡고 주사라도 놓고, 안된다고 안아서 들어 올릴 수라도 있지. 내 동생은 나보다도 훨씬 덩치가 큰걸. 동생은 금식을 왜 하는지도 모르니 자꾸먹고 싶어 하고, 아픈 링거가 맞기 싫다고 뿌리치기도 하고, 집에 간다고 옷을 입기도 했다. 가장 큰 난관은 링거를 자꾸 빼버리는 것이었다. 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증상을 명확히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가족이라면 조금이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래서 의료진들은 원활한 치료와 처치를 위해서 간병인이 아닌 가족이 한 명 이상 상주해 주길 바랐다.
아버지는 사업상 다른 나라에 계셔서 오실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나, 이렇게 번갈아있으려다 아니, 같이 병원에 있기로 했다. 한시라도 동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서 화장실도 가기 어려웠다. 잠시라도 한 눈 판 사이에 무언가를 먹어버릴 수도, 링거를 뽑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명이 병실에서 같이 생활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
왜냐면 가족 돌봄 휴가의 범위에 형제는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형제가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case 2 )
나는 지적장애인인 언니와 나. 이렇게 둘이 생활한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지방에서 돈을 벌어주신다. 언니는 주간 돌봄에서 충분히 돌봄을 받고 있어서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발생하고, 돌봄 센터의 운영은 들쭉날쭉했다. 심지어 문을 닫거나 기약 없이 축소 운영되기도 했다. 더 이상 연차를 내기에도 어려웠다. 지금껏 언니의 보호자였던 나는 직장을 관두어야만 했다. 언니는... 내 마음속, 실제 생활 속에서는 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자 내가 언니의 보호자였지만, 법적으로 나는 언니의 보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 돌봄 휴가나 휴직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돈을 나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아빠가 직장을 마저 다니시고, 나는 쉬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언니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언니는 내가 없으면 아무 생활도 못하기에. 언니는 타지 생활을 하는 아빠를 조금 더 불편해하기에.
위의 사례들은 '예'일 뿐이다. 아마도 현실은 직장에서 이보다 더 배려해 주실 수도 있고, 되려 더 힘들 수도 있다. 여하튼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주변에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이렇게 형제들은 현행법상 가족 돌봄 휴가의 '가족' 범위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우리 형제들이 장애인이어도. 그래서 내가 실질적인 보호자임에도.
가족 돌봄 휴가의 '가족'에 형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장애를 가진 형제라면 더더욱.
이번 코로나로
원격수업 등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님들께는 가족 돌봄 휴가와 더불어 지원금 정책이 있었다. 그렇다면 성인 중증 장애인의 경우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의 미운영 혹은 축소 운영된 가족들의 경우는? 그 장애인을 형제가 돌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