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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Sep 17. 2015

개인 통산 1호

처음의 의미

'첫' 글에도 썼던 것처럼 내가 원체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일단 관심이 생기면 꽤 알 때까진 해야 하는 습성이 있어 그런진 몰라도, 유독 나에겐 그렇게 '처음'이 중요하다. 사소한 일이라도 처음  함께하는 거라면, 결과가 안 좋아도 즐겁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을 만난 이후론 더 그랬다.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그 처음이란 게 참 의미 있어졌다. 개인 통산 1 호라는 건, 그야말로 딱 한  번뿐이니까.


첫 연애나  첫사랑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분명 끝날 걸 아는데 의미를 부여하면 너무 아파질 테니까. 그런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닌 척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바보 같은 짓이란 걸 깨닫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면서 많은 처음을 겪는다. 첫 서류 통과, 첫 면접, 첫 출근, 같은 것도 그렇고 첫 퇴사, 첫 이직, 그런 것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참 많은 '처음'을 겪고 살아간다.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십 몇 년만에 처음으로 얼마 전에 '개인 통산 1호' 복국도 먹어봤고, 오늘은 '개인 통산 1호' 역대급 실수로 아쉬운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엔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사실 이 말은 마음을 움직일 말이라기 보단 지극히 과학적인 말에 가까워서다.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의 명인데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라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다. 그래서인지 매 첫 순간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깨달은 이후엔 더더욱 시작이 중요해졌다. 


좋아하는 혹은 관심이 가는 뮤지션의 첫 단독 공연을 보는 게 그런 기분이다.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할 만한 자리까지 준비하고 쌓아온 과정도 과정이지만, 그 시간을 꾹꾹 응집해서 보여주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연 이어서다. 그래서인지 첫 공연들은 그렇게 제 시간에 끝나는 법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고 끝내고 나서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서 벅찬 마음을 동시에 듬뿍 받고 공연장을 나오게 된다. 이 글의 커버 사진은 싱어송라이터 정재원의 첫 단독 콘서트 무대 사진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어떤 뮤지션의 첫 단독 콘서트였다. 나에게도 개인 통산 1호였던 셈이다. 최근 봤던 멜로망스의 첫 단독 콘서트도 그랬다. 내가 더 뿌듯하고 벅차 엄마 미소를 가득 짓다 나왔다. 다녀와서도 내내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좋아하는 팀의 어떤 선수의 개인 통산 첫 승이나, 첫 홈런, 그런 걸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어쩌면 또 다른 벅참인데, 뜻한다고 이루어지지만은 않는 처음 이어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처음 이어서다. 뭐 어떻게 만들어진 처음이든, 그 모든 처음들은 낯설고 감사하고 벅차고 긴장되고 설레고 얼떨떨하다. 그렇게 처음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고 나서는, 꼭 '좋은 처음' 이 아니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처음이니까, 그 자체로 대단한 거고 더는 없을 일이니까. 


도저히 무엇에도 익숙해지는 게 싫은 나는 그렇게 서툰 처음이 좋다. 처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늘 두 번째는 늦게 왔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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