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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Sep 02. 2015

익숙해지기 싫어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기 싫어서

아직 인격수양이 덜 됐는지 뭣 같은 것은 꼭 뭣 같다고 말해야 한다. 정 말 못할 상황에는 뭣 같지 않은 척 하는 연기력이 늘고는 있지만 그래도 꼭 말을 하고야 만다. 어쩌면 더 영악하고 교활하게 아닌 척 돌려 까는 재주도 늘어가는 것 같다. 역시 인격수양이 되려면 한참 멀었나 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센 마디와 센 문장만 뱉게 되는 게 지금 내가 너무 불안해서다. 역대급 사건을 갱신하고 있는 요즘이라 사실 뭘 쓴다는 게 내키지도 않아서 자꾸 말이 짧아지고 험한 단어만 늘어간다. 화의 영역도 화의 영역이지만 가을만 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리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다가 자꾸만 말을 줄이는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고된데도 잠엘 잘 못 들고 그래서 그 다음날 꼭 몽롱한 하루를 보내고, 꿈을 꾸는 건지 깨어는 있는 건지 모르게 지내고서는 또 다시 그 정리 안 되는 마음들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갈까 꽁꽁 부둥켜안고 전전긍긍하면서, 그렇게 뱉으려다 삼키고 뱉으려다 삼키고 한다.


익숙해지는 게 싫다. 그토록 처음에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까. 지금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어릴 때부터 익숙해지는 게 싫었다. 좋은 것도 덜 좋아지고 못 참겠는 부조리도 점점 더 참을 만 해지고 슬픈 것도 아픈 것도 점점 더, 이쯤 되면 견딜 만 하다고 여기게 되는 게 싫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정말 닳고 닳는 어른이 될 것 같아서, 익숙해지는 게 지독하게도 싫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 그 말이 그렇게 싫다. 다들 그렇게 살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곧 괜찮아 질  거'라는 말도 싫다. 곧 괜찮아지는 건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기야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아가는 게 싫다. 그래서 자꾸 날을 세운다. 좋은 것에도, 슬픈 것에도, 아픈 것에도, 싫은 것에도 익숙해지는 건 그냥 그대로 져버리는 것 같아서다. 


안 괜찮다. 안 괜찮게 사는 게 좀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 결국 안 괜찮다는 걸 알 때다. 경험적으로 괜찮아지는 건 너무 슬프다. 사춘기 때부터 거의 10년 동안 가을을 지독하게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안 괜찮다. 특히 올 가을은 정말 역대급일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한다. 아직도 무섭다. 괜찮지가 않다. 괜찮아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늘 가을마다 이 지경이지만 앞으로도 사는 날 동안은 가을마다 이 지경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가을은 이 지경이라 내가 가장 좋아해버리고 마는 시간이다. 


얼마 전에 좀 화나는 일이 있었다. 까라면 까는 사람들이 많은 조직은 너무나도 절망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러고야 있지만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도 감정도 엉망인 요즘인데 되는 일도 하나도 없다. 되는 일이 이렇게도 없을 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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