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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Oct 13. 2016

노쇼

어쩌면 다시 안 올 이에 대하여

중고딩나라에 물건을 올리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 제품인데 도저히 나는 못 입을 것 같아 어렵게 내놨다. 몇 명의 연락이 왔는데, 맨 처음 연락한 사람이 곧 입금하겠다 하여 후에 연락한 이들에겐 거래 중이라고 했다. 다음 날, 늦어서 미안하다며 오늘은 입금하겠다던 그는 그 다음 날까지도 입금 없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노쇼. 자영업을 하는 지인들이 그렇게 힘들어 하던 그것. 어떤 이는 수십 인 분의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다가 노쇼를 당해 엄청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런 중고 거래가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결국 괜히 기다렸던 내 쓸 데 없는 배려만 상처받고 말았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확실하게 이렇다 저렇다 오가는 말 없이 갑자기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사람. 처음엔 바쁘겠다싶어서, 귀찮게 하고싶지 않아서 연락은 하지 않아도 막연하게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은 비워두고 기다렸던, 잠재적 우선 예약자였던 그런 사람.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의 연락을 꼬박 기다리면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당신이 '노쇼'임을 깨닫게 했던 그런 사람.


슬픈 건, 그 노쇼 고객은 앞으로도 나타날 일이 없을 거란 사실이다. 예약을 취소한 사람과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의 간극은, 어쩌면 이별에도 필요한 예의의 영역에서 기다린 마음을 비참하게 만든다. 노쇼 고객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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