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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Oct 23. 2016

기억의 촌스러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기억은 촌스럽다.

지나고 나면 하이킥할 만 한 지난 사람에 대한 기억도, 예전에 입고 다니던 옷이나 예전에 하던 화장도 다 촌스럽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촌스러운 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그래도 그때는 그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촌스러움이 있어서 지금의 약간은 덜 촌스러운 내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까, 사람이 인생에 깨야 할 찌질 퀘스트 혹은 촌스러움 퀘스트의 총량이 있다면 어릴 때 후딱 해치우는 편이 조금은 더 세련되고 덜 찌질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기억이야 촌스러운대로 미화도 된다 싶은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011년부터 해온 인스타그램을 정리하고 싶었다. 워낙 오래 했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는 데다 병적인 기록 집착이 있어서 사진이 5천 장에 육박하던 계정이었다. 아이폰에도 과부하가 걸렸는지 몇 분마다 한 번씩 다운되곤 했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 반절만큼은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지인들의 우려만큼 사진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은게, 과거 여러 차례 하드디스크, 외장하드, 클라우드까지 날려먹은 경험으로 여러 단계로 백업이 돼 있는 사진들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사진들이 그렇게 촌스러운 거다.


옷차림이나, 화장이나, 앞머리나, 그때 그 감정을 표현했던 방법들이 촌스러운 건 차치하고 나름대로 사진을 즐겨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분명 괜찮아보였던 그 사진들이 너무 촌스러운 거다. 도대체 왜 이런 구도로 찍었는지, 이런 필터를 입혔는지 이걸 뭘 자랑이라고 계정을 여태 한 번도 닫거나 정리도 안 했는지. 그냥 조금씩 이상한 사진만 정리하려다가 시작한 일이 대형 공사가 된 이유였다.

예전에 어떤 기자가 했던 말 중에 거의 내가 평생 가지고 갈 문장처럼 기억하는 게 한 문장있다. '과거에 쓴 글은 당연히 부끄러운 게 맞다. 과거에 쓴 글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면 그 이후에 하나도 성장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 맥락에서 생각하면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후 약 5년 동안 내 사진 실력도 엄청 괜찮아진 것일테고, 보는 감각도 좋아졌다는 소린데, 그 성장조차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기억이 촌스러운 건 나름의 추억이지만 기록이 촌스러운 건 도저히 못 참겠다. 열심히 찍고 열심히 써야겠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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