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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Jul 01. 2020

바디프로필 디데이, 다시 수능을 앞둔 기분이었다

수능을 더 잘 봤으면 좋았었겠지만(13년 전에...)

어떤, 1년에 몇 명 뽑지 않는 회사의 입사 시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곳에 합격했던 꽤 학번 차이 많이 나는 선배가 "내 인생에서 그 회사 시험 보는 날이 제일 똑똑했던 것 같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표현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결국 저렇게 합격했으니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 그런 합격을 하고 나면 그 말을 꼭 써보고 싶었는데.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면서 그 말이 좀 떠올랐다. 물론 같은 의미는 아니고, 비슷한데 좀 다른 의미였다. 한 일주일 남았던 때부터는 꼭 수능을 일주일 남겨둔 심정과 같았다. 


지금 와서 뭘 더 본다고 한두 문제 더 맞아 더 좋은 학교를 갈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할 수도 없고. 최근 얼마간은 정말 열심히 했지만 그 보다 좀 전엔 혼자 여지도 줘가면서 했던 게 후회가 되고. 그래도 이제 어쩔 수 없으니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 똑같았다.


이제 와서 운동을 더 한다고 근육이 더 커질 것도(먹는 양이 줄었고 체지방을 날리는 중이기에 더더욱 득근은 힘든 시기), 솔직히 조금 더 먹는다고 살이 엄청 찔 것도 아니고(당연히 식단 안에서의 이야기다). 근데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도 먹는 것에 여지를 둘 수도 없었다. 


정말 괴로웠던 건 막판 이틀. 수요일 촬영이었고 일요일까지는 물을 많이 마셨다. 월요일, 화요일엔 각 1리터씩 마셨다. 사람에 따라 단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원래 평소에도 하루에 물을 3리터 가까이 마시는 물먹는 하마인지라, 일상생활이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피티쌤의 의견에 1리터로 제한했다. 


그런데 1리터도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촬영 전날은 탄수화물 로딩이라는 걸 하는데, 피하 수분층에서 수분을 모두 흡수하면서 몸을 더 드라이하게 만들어 근질이 잘 보이게 하는 과정이다. 물을 하루에 1리터만 먹으면서 식빵을 하루 종일 먹었는데(로딩하는 탄수화물 종류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빨리 끝내고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꼭 수능 보기 전날 같았다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하던 걸 안 할 수도 없는.


사실 수능 전날 같은 기분보다, 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촬영 날이 몸이 제일 좋았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 싶었는데. 물론 사실이기는 하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아쉬움이 남았기에 당당하게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 채로 촬영을 마쳤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엔 퇴근하고 나서도 내 유산소를 위해 같이 자전거 타 주고, 달리기 해준 최측근 덕이 컸다! 


몸 좋은 사람을 보면 이젠 '멋지다'가 아닌' 존경'이 나온다 

    

예전엔 몸 좋은 사람들을 보면 와 멋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워낙 없고(?) 있어도 알기 어렵고(?) 관심사가 이쪽이 아니었으니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도 별로 볼 일이 없어서 너무 희귀한 존재(?)였기 때문에 더더욱, 연예인 보듯이 '와 멋있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언젠가 되게 오랜만에 프리다이빙을 하러 잠수풀에 갔는데, 정말 엄청 몸이 좋은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감탄이 나오기도 전에 '와, 저 몸이 되려면 도대체 3대 몇이나 하는 거지', '하루에 단백질은 얼마나 먹는 거지', '얼마나 오래 운동했을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몸을 만들기 위해
그 사람이 지나왔을 엄격한 통제의 시간들,
노력들이 보이기 때문에,
이 근육들은 비단 '겉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촬영을 준비하고, 촬영하면서, 그리고 원본을 받아보면서 그 마음은 더 커졌다. 사실 내 피티쌤이랑도 이야기를 많이 했던 부분이지만, 운동하는 사람들, 특히 트레이너 분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게 직업이라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다.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은 없지만, 이런 자기 통제의 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누가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일종의 교육, 서비스 직이니 만큼 잘 가르쳐주고, 회원들과 얼마나 유대를 형성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직장을 다니면서 바디프로필을 주기적으로 준비하고, 거기에 피트니스 대회까지 준비하는 분들은 더더욱 대단하다. 나도 사실 코로나의 영향이나 이런 게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일인데, 그런 것도 없이 온전히 자신의 어떤 것들을 포기해가면서 운동 시간을 매일 확보하고, 식단을 챙기는 건 정말 보통 의지로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같이 뛰어줘서 고마워 :)


버킷은 아니었다, 다만 잘 완수하고 싶은 프로젝트였을 뿐 


이번 촬영 준비와 촬영을 진행하면서 나 또한 내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내 최측근의 말을 인용하면 "독하게 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독하게 할 줄은 몰랐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애초에 버킷리스트도, 로망도 아니었기 때문에 예약을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컨셉 좀 생각하고 있냐"는 피티쌤의 질문에 즈음해서 하죠 뭐, 하는 대답만 했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에 스스로 무너져서 이걸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술 마시고 싶은 날도 너무 많았고, 커피우유 같은 걸 마시고 싶은 날도 많았고, 아침 출근길에 고구마와 닭가슴살 대신 김밥을 먹고 싶은 날도 있었다. 어쩌면 그걸 하루 정도, 한 끼 정도 먹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무너졌다는 사실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버텼다



참치 집에 갔다가 너무 맛있는 대나무 술을 서비스로 한 잔씩 주셔서, 향이 너무 좋아 혀끝에 살짝 한 방울 대본 것 외엔 44일 동안 술을 정말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가까운 지인 송이님의 말을 인용하면, "로망은 없었지만 일종의 프로젝트로 인식되는 순간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하지는 않고 촬영을 마친 것 같다. 한번 해봤고, 이렇게 운동하면 당일까지 어떤 몸이 나오는지 해봤기 때문에 만약 한 번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포기해야 할 많은 경험과 시간들(사실 포기라기보다, 등가 교환이라 생각하지만)에 대해 고민이 있어야 또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혹 다음에 또 한다면, 이번엔 11자나 내천자 복근이 아니라 식스팩 정도는 보고 싶기도 하고. 


*이 중간에 썼다가 빼놓은 스튜디오 예약과 촬영 컨셉 정하기, 스튜디오, 치팅 등에 대한 이야기는 번외로 다음 편에 다룰 예정이다. 


밤낮으로 운동을 하니까 애플워치 다시 살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언스플래시에서 사진을 퍼와보았다. 아 다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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