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충격이었다. 본투비 쓰레기를 다룬 소설인 줄알았는데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다. 물론 내가 보는 '인간적'은 그렇게 세상이 말하는 '인간적'과는 다르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아예 극과 극이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여튼 내가 보는 '인간적'의 기준에서 요우죠우는 엄청 인간적이다. 까뮈의 이방인과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이방인도 처음 읽을 때는 무슨 쏘시오패스를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억눌렸던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보고 뫼르소 역시 감정을 지닌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실격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 한결같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인간이란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제 3자가 보는 것 같은 관찰자의 시선이다. 자기자신도 그렇게 바라본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 속 사건들이 담담하지는 않다. 사건만 딱 떼어내고 본다면 쓰레기는 맞는데 주인공이 뭘 잘 못 했는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신의 성을 팔고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인간을 판단한다. 요우죠우의 인간에 대한 판단이 다 맞는 말이다. 오히려 어린 나이부터 기가막힌 통찰력을 가진 것에 감탄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사랑과 우정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읽는 내내 그냥 인간은 다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지극히 인간적이다. 심지어 요우죠우는 일방적으로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 같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기가막히게 준다. 상대방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요우죠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그게 비하면 요우죠우는 자신의 행동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하며 반성도 하고 그런 자신을 폐인, 인간실격이라고 말한다.
T발, 너 C야?
이방인을 읽을 때는 뫼르소가 소시오패스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우죠우는 뫼르소에 비하면 훨씬 사회화된 인간이다. 뫼르소는 심지어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태양이 뜨겁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방인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 부분이 너무나 이해가 안됐는데 두번째 읽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가 되었다. 책이 와닿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 뫼르소와 요우죠우는 비슷하다. 그런데 다른 점은 뫼르소는 사회 생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뫼르소를 사회 악으로 본다. 행동이 너무나 이상한데 사람까지 죽였으니 그냥 악마 그 자체로 본다. 대신 뫼르소는 사람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위한 일이라도 진실이 아니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느다. 요우죠우는 뫼르소와 다르다.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생각과 다르게 행동한다. 익살스럽게 사람들을 웃긴다. 그래야 사람들의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우죠우는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얻을 게 있으면 성적으로 주변 여자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이것도 요우죠우만의 잘못이거나 싸이코패스라 그런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혹 당하는 여자들도 요우죠우를 원했기 때문이다. 요우죠우랑 있을 때 그들도 행복하다. 요우죠우가 진심이든, 아니든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나를 필요로하고 내가 필요한 사람이 옆에있으니 된 것이다. 그것을 누구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이방인을 읽으며 뫼르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은 뫼르소의 마지막 장면이다. 막판에 죽기 전에 신부에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 붓는다. 이 때 뫼르소는 누구보다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의 성장과정이 나와있지는 않지만 상처를 받아 꽁꽁 싸맨 마음으로 사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가 마지막에야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며 세상과 섞인다. 요우죠우의 끝은 나와있지 않고 요우죠우가 이렇게 뫼르소처럼 감정을 분출하는 장면도 없다. 아마 요우죠우는 끝까지 그냥 덤덤하게 자신의 끝을 맞이 했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뫼르소와 요우죠우가 달라보이지만 사실 내면에 가진 기본 생각은 동일하다. 뫼르소나 요우죠우나 자신만의 세상과 생각에 갇혀 '삶은 별 게 없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 이 지점에서 둘이 만난다. 자꾸 인간실격을 읽으며 뫼르소가 보였던 이유인 것도 같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생각에 동의하기에 뫼르소와 요우죠우가 그냥 둘다 지극히 평범한, 아니 삶을 꿰뚫어보는 너무나 똑똑한 인간처럼 보였다. 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인간들은 모두가 억지로 살만한 가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억지로 삶에 의미부여를 한다. 살만한 가치가 있다면 이렇게 살아가야할 가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을 것이며 자살을 죄악시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그 가치를 저버린 사람들의 어리석은 선택 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출처 입력 : 이방인
딱 이 지점에서 뫼르소와 요우죠우가 만난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뫼르소는 대놓고 말하고 요우죠우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실격을 바라보는 시선이 딱 둘로 나뉘는 것 같아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린다. 요우죠우를 본투비 싸이코패스로 보는 시선과 그냥 인간으로 보는 시선이다. 왜 이렇게 나뉠까를 생각해보았는데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 시선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우죠우를 싸이코 패스로 보는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기대가 있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그냥 '인간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시선에서 요우죠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인간에대한 기대와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시선이 맞는지 정답은 없다.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이방인을 처음 읽었을 때 '뭐 이런 인간이 다있지?'라고 충격을 받았던 것에서 두번째 읽었을 때 뫼르소를 이해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다. 뫼르소를 이해한 상태,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인간실격을 접하니 요우죠우의 행동이 그냥 평범해 보였다. 더군다나 요우죠우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안에서 요우죠우가 의도한 행동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피해를 줬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가문의 망신 정도 였을까? 오히려 싸이코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요우죠우는 자기자신을 망가뜨리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웃음과 행복을 준다. 자기 자신은 세상에서 점점 더 가라앉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재미를 주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우는 아주 정직하고 영리하고 ...술을 마셔도 천사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출처 :인간실격)
인간실격은 마담이 기억하는 요우죠우에대한 이 후기로 끝이 난다.
둘 중 하나다.
요우죠우에게 속은 사람이거나 진짜 요우죠우의 모습이거나.
요우죠우의 내면을 알기에 이 말은 완벽히 요우죠우의 연기에 속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짜였던들 뭐가 달라지며 진심이 아니었어도 요우죠우로인해 마담이 행복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앞에서 ‘바뀐 척’이라도 하라고 한다. 바뀐 척이라도 하면 그게 진짜 바뀌었던 아니던은 상관이 없다. 요우죠우도 사람들 앞에선 철저히 침전하는 자신을 숨겼지만 겉으로는 익살을 잊지않았다.
요우죠우는 자신을 폐인, 인간실격이라고 한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어때야한다’가 요우죠우 안에 있었던 것같아보인다. 그런데 사실 인간실격도 그냥 제3자가 자신을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진짜 요우죠우가 그렇게 생각한건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자신을 바꿀려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지는대로 살았다. 그래서 최종도착지점은 (제 3자가 보기에) 인간실격이다. 이 조차 담담하다. ‘나는 그냥 이렇게 되는대로 살아봤는데 실격.’이런 느낌이다. 어떤 미련이나 후회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더 잘 살아볼껄. 이런 생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나는 실격이야. 끝.
요우죠우는 되는대로 산 것 같은데 자신은 몸부림치며 살았다고 한다. 응?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출처 : 인간실격)
요우죠우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몰랐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신의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를 몸부리치며 살아왔다고 한 것 같다. 요우죠우의 ‘되는대로 살아진 삶’을 통해 그래도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려 준다. 결론은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인간실격이든, 인간합격이든, 다 지나간다. 이것도 요우죠우가 굳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자기 생각을 적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는 똑바로 살아. 이런 느낌도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이 주는 하나의 위안이라면 이것 같다.
막 살아도 다 지나간다.
누구에게는 인생책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회자되는 책이지만 그냥 그렇다. 내게는 새로울 것도 없고 놀랄 것도 없고 그냥 요우죠우의 매가리없는 서술처럼 모든 게 매가리없고 담담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모든 서술이 자기 악행에 대한 변명같기도하다. 읽다보면 다 납득이 갔기때문이다. 나역시도 요우죠우에게 홀렸나보다.
그럴 수 있지
그게 인간이지.
vs
인간이라면 그러면 안되지.
인간은 어때야 할까? 요즘 연일 터지는 일들에 인류애가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 그런가. 인간이 어때야한다는 기준자체도 없다. 늘 그 기준이 무너지고 무너지고 또 무너져왔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과정에서 상처는 오롯이 내 몫이다. 그 뒤론 인간에대한 어떤 기준을 갖거나 기대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알았다. 요우죠우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싶다. 가식적이거나 혹은 아직은 잘 모르거나. 요우죠우의 행동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은 얼마나 무결한지 묻고싶다. 단지 요우죠우가 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요우죠우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나도 인간 합격인지, 인간 실격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모두가 그래도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서 실격 안되려고 노력하며 사는 것 같다. 요우죠우는 인간실격이 맞다. 실격이 되게 자신을 그냥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는 오직 그것때문에 요우죠우가 인간실격이다. 일단 주어진 삶에서는 최선을 다해봐야하지않나 싶어서다. 그런데 이 기준을 들이대면 인간합격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당장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요우죠우보다 조금 낫다면 인간 실격은 안되기 위해 아등바등 대고 있다는 것. 그거 하나인 것 같다.
과연 나는 인간합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