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지만 명확한 답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될 것 같은 질문들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혹은 ' 왜 사는가?' 역시 그런 질문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톨스토이는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갑자기 책 제목이 귀에 꽂혀서 바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굉장히 짧은 단편소설 제목이다. 가난한 제화공 세묜의 이야기다. 자신이 받아야 할 돈도 받지 못한 가난한 제화공이 벌거벗은 미하일라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베일에 쌓인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벌을 받는 중이라고만 한다. 세묜은 당장 자신도 가족을 이끌 돈이 없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보다 더 힘들어보이는 미하일라를 집으로 데리고와 도와준다. 미하일라는 세묜과 함께 그 집에서 생활을 하며 제화 기술을 익힌다. 진심을 다해 구두를 만들어 소득도 늘어간다. 미하일라는 그 집에 온 후 딱 세 번 미소를 짓는다. 세묜은 미하일라의 세 번의 미소를 본 후 그 미소의 의미를 묻는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리라.
(출처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라가 벌을 받기 전에 하나님이 미하일라에게 이 질문에 대한 세 가지 대답을 얻고 오라고 했다. 미하일라는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을 얻을 때마다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을 내쫓지 않은 아내를 보고 사람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 째 답은 자신의 앞날도 모른 채 1년을 신어도 헐지 않을 장화를 만들어달라는 부자를 보고 사람에게는 자기 육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었다. 부자는 1년을 신어도 헐지 않을 튼튼한 장화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부자 뒤에는 죽음의 천사가 있었다. 그 부자는 그 구두방을 나가자마자 죽는다. 자기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은 1년을 신어도 헐지 않을 장화가 아니라 장례를 치를 때 필요한 신발이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장화를 만들어달라는 부자를 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해서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됐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낸 여인을 보며 그 안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을 보았고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닌, 사랑으로 살아감을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책을 읽으며 니체가 많이 생각이 났는데 니체랑 톨스토이가 거의 동시대 사람이다. 톨스토이가 1828년에 태어나 1910년에 죽었는데 니체는 1844년에 태어나 1900년에 죽었다. 신기하다. 동시대 사람인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사는 이유를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공표하고 초인이 되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살라고 했다. 둘 다 대단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
vs
인간의 의지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니체는 의지를 갖고 삶을 이끌어 가라고 했다. 선택은 결국 또 각자의 몫일 것이다. 이 사이에서 정말 잘 모르겠다. 톨스토이가 맞는 것도 같고 니체가 맞는 것도 같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신은 없다고 생각하고 니체의 말대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신이 다 모든 것을 이끌어 줄꺼라고 믿었다가 신이 없으면 끝이다. 그런데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가꾸다보면 신이 나중에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살았으니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과 가까워 질 수 있다. 사실 그런데 톨스토이가 말한 삶도 게으르게 신만 믿고 살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톨스토이와 니체가 같은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신의 뜻이든, 인간의 의지든) 열심히 살아.
제목이 너무나 끌려서 읽었는데 상당히 종교적이다. 제목만 보면 종교적인 것보다는 철학적인 내용일 것 같았다. 톨스토이가 엄청 고뇌를 펼쳤을 떄 나온 작품들이라고 한다. 톨스토이가 하고 싶은 말은, 종교적이지만 생각해보면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진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늘 궁금하다. 신이 있든, 없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그 사랑이 나에 대한 사랑이나 여자와 남자와의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닌 이웃에 대한 사랑, 나보다 힘든 사람에 대한 사랑 등 모든 박애주의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뜻만 빼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철학, 종교들이 하는 말도 다 이 말이 아닌가 싶다.
사랑하라. 베풀어라.
그럼에도 이 소설이 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톨스토이가 무슨 말을 할 지 궁금했다. 엄청 뻔한 말 같기는 한데 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역시 이것이 진리인가. 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특히 정작 사람은 자신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말. 오히려 나를 지켜보는 이웃이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는 것. 그 발상이 참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그냥 인간은 어리석다라고만 생각했는데 발상의 전환이다. 아주 큰 숟가락으로 천국에서는 서로 먹여주며 살아가는데 지옥에서는 서로 먹겠다고 하다가 굶어 죽는다는 글이 생각이 났다.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 게 보인다는 말. 나는 또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보인다는 말. 생각지도 못했던 따뜻한 말이다. 점과 점이 모여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점과 점이 모여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
얼마 전에 회사에서 상처받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상사와 이야기하는 간담회 자리였는데 나는 전사 모드였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들 뒤에서는 전투 의지를 다졌지만 막상 그 앞에서는 나만 또 섬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사한테 아부를 1도 못하는 나로서는 아부가 넘쳐나는 그 분위기에 너무나 적응이 안됐고 표정관리를 못하고 있었다. 다들 간담회가 끝난 후 동료들이 있어서 든든했다고 했는데 나는 든든함을 하나도 못느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단점과 내 실수를 다 감싸주고 수습해주는 고마운 동료들이다. 정말 든든한 동료들이고 항상 감사한 동료들이다. 각자 표현방식이 다른 것이고 할 수 있는 역할이 다른 것인데 그때 그랬다고 내가 또 마음을 닫아버리려 한 게 미안해지고 속좁은 마음을 또 반성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이 분위기를 유하게 풀어줘서 그때 원했던 것이 많이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각자 자리에서, 각자 성격에 맞게 같이 싸운 것이었는데 나는 또 나와 같은 방식이 아니었다고 투정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싸우는 기분이 든다는 내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언제든 자기에게 기대라고 흔쾌히 어깨를 내주는 동료들이다. 하나, 하나의 점이 소중한 요즘. 단 하나의 점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점과 점이 모여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또 하나 알았다. 내게 필요한 것을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때 그때 내가 무언가가 필요할 때 '짠'하고 다 내 앞에 나타나나보다.
사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방향을 잃었다. 세상 예민, 세상 까칠, 세상 시니컬 해졌다. 고슴도치가 되어 뾰족뾰족 가시만 드러내고 누구든 걸려봐라. 이렇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그렇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일때면 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 혼자만 이렇게 살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통법칙을 지키라고 해서 나는 엄청 잘 지키며 살고 있었는데 교통법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나보다 앞서 가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와 같은 기분이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게 맞을까?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언젠가 벌을 받겠지? 나는 잘 지켰으니까 보상이 있겠지? 이렇게 믿고 살았지만 어떠한 벌도, 어떤한 보상도 없었음을 알았을 때와 같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톨스토이를 믿어봐야하는건가. 사실 외면하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못 본 척, 모르는 척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다시 또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또 열심히 살아봐야 하나보다. 어쩔 수 없이 또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