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다. 까뮈의 담백한 문체가 너무나 맘에 들고 사회에서 강요된 법칙에 따르지 않았다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 뫼르소가 꼭 나와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같다기 보다는 대리 만족의 느낌이 더 크다. 하기 싫어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해야만 하는 나에 비해, 뫼르소는 훨씬 용기 있어보였다. 사람을 죽인 것은 어떻게도 용서가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 외에 일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태양이 강렬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도 그럴 수도 있겠다도 싶다.
인간실격을 읽을 때 뫼르소가 많이 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뫼르소, 살인사건'이라는 책을 추천받받았다. 흥미로워 보이는 제목에 끌려 바로 읽었다. 책은 술술 읽힌다.
'뫼르소, 살인사건'은 이방인의 스핀오프같은 책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이방인 오마쥬라는 생각도 든다. 이방인이 첫 소절이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한다면 뫼르소, 살인사건은 '엄마가 살아있다'로 시작한다. 이렇게 이방인을 오마쥬한 책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내가 이방인에서 좋아했던 문장들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제목만 보고는 뫼르소의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 줄 알았는데 뫼르소가 죽인 아랍인의 동생이 쓴 글이다. 피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쓴 글이다. 처음에 책을 열었을 때 그 부분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이방인에 너무 동화돼서 아랍인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방인 책에 대해 설명할 떄도 '태양이 강렬하다는 이유로 아랍인을 죽였다' 로만 설명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엄청 허망한 죽음이었고 이방인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임에도 이방인에서 아랍인을 철저히 엑스트라로 남겨버렸다. 심지어 아랍인은 이름도 이방인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랍인이 죽은 후에도 '아랍인을 왜 죽였냐'보다, 뫼르소의 평상시 이상한 행동들이 더 부각이 되었다. 이방인에서 아랍인은 철저히 도구로 쓰였다. 뫼르소의 성격을 보여주고 왜 뫼르소가 이방인인지 단편적으로 드러내주는 도구다. 나도 그렇고 이방인을 다 읽어도 아랍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이방인에서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히 무시 되었기 때문이다. '뫼르소, 살인사건'에서는 그 부분을 꼬집는다. 자신의 집이 하루아침에 형을 잃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형은 신문기사에도 이름이 나지 않고 그냥 아랍인으로만 나오고 심지어 형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랍인의 이름은 무싸다. 그리고 동생의 이름은 하룬이다. 자신의 엄마는 형을 잃은 후에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하룬은 자기가 형대신 죽지 않았다는 죄책감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결국 뫼르소의 방식대로 하룬도 무싸의 복수를 하게 된다. 그 후에야 무싸의 엄마도, 하룬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룬과 뫼르소가 많이 닮았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 같다. 하룬도, 무싸도 뫼르소처럼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하룬은 프랑스 식민지에 살다가 독립을 맞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하룬네 가족은 발붙이지 못한다. 하룬이 무싸에 대한 복수를 하고 뫼르소가 신부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던 것처럼 하룬도 이맘(이슬람교 성직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방인에서는 이 부분이 좋았는데 하룬이 이맘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부분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이방인에서는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하룬도 비슷한 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오마쥬 부분이라서 그런지 그냥 이방인을 흉내낸 느낌이다. 처음과 끝이 이방인과 똑같다. 아 뫼르소는 처벌을 받지만 하룬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다.
그렇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요즘은 고전이 좋아지고 있다. 고전 소설이나 스테디 셀러를 읽으면 확실히 마음의 울림이 있다. 고전이 고전이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방인'의 깊이를 따라오지 못한다. '뫼르소, 살인사건'은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그리고 이방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이지만 내용은 그렇게까지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읽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이방인에서 엑스트라로 처리했던 '아랍인'에 대해 나 역시 엑스트라 취급을 했었다는 게 미안했다. 요즘 여러 사건들에서 가해자에 초점이 맞춰질 때 피해자측에서 피해자도 기억해달라고 할 때 '그게 더 나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멀리서 보면 죽음도 하나의 숫자, 통계로 처리된다. 그 통계 안에 내 지인이 있다면 너무 허무하고 속상할 것 같다.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서사에는 민감한데 피해자의 서사에는 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죽음이 통계나 기삿거리가 아니라 피해자의 서사가 입혀지는 순간 다른 사건이 되고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일례로 얼마 전에 떡볶이 배달하다 신호위반 버스에 치여서 돌아가신 분 기사가 그렇다. '떡볶이 배달'이 강조되면 피해자 유족에게 감정이입하게 되고 가해자가 더 죽일 놈처럼 느껴진다. 그냥 '신호위반 버스에 목숨을 잃은 오토바이 운전자'와 180도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자신의 사건에 서사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 점에서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어떤 서사도 부여되지 않았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뫼르소, 살인사건'에서도 무싸의 서사가 주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냥 무싸가 죽음을 당한 후에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초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서도 뫼르소에 생각이 달라지거나, 아랍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뫼르소가 더 나쁜 놈으로 보이거나, 아랍인이 더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사실 그런 것을 기대해서 그런 부분은 좀 아쉬웠다. 제목에서 낚인 셈이다.
무싸도 너무 허망하고 무싸의 가족들도 계속 화가 났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에 '묻지마 살인'을 당한 것이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이제까지 그런 관점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다 다르게 보였다. 오펜하이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펜하이머의 정적인 스트라우스가 달리 보였다. 스트라우스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뫼르소가 달리 보이진 않았고 책 제목에도 '뫼르소'를 버리지 못한 것을 보면 하룬조차 '뫼르소'의 존재를 엑스트라로 처리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제목이 '무싸의 동생 이야기'였어야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제목을 지으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서도 무싸는 주인공이 아니다. 자신의 형이 이름도 없이 죽어갔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그 뒤에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지, 무싸가 왜 그런 죽음을 당했는지, 무싸의 삶은 어땠는지는 없다.
이 책에서도 무싸의 이야기는 없다.
결국 무싸는 3번죽었다고했는데 이 책이 나옴으로써 한 번 더 죽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취미로 이방인 오마쥬 혹은 스핀오프 책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우리가 그냥 스치는 존재들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방인에서 까뮈가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을 하지 않으면 바로 이방인이 되는 현실을 꼬집었다면 이 책에서는 사회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도 저마다 서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정답처럼 생각하는 사회 다수가 원하는 모습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늘 '많고 적음'의 차이기 때문에 정답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지금은 맞아도 그때는 틀릴 수도 있는 것이고 지금은 틀려도 언제는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수가 원한다고 사회가 원하는대로 살아야할 이유도 없다. 뫼르소나 하룬이나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았다. 뫼르소는 그냥 생겨먹은대로 살았고 하룬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 그래서 모든 곳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운이 좋아서 자기가 생겨먹은 모습이 우연히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지 않는 한 끊임없이 자신을 깎고 깎아야 한다. 그래서 뫼르소의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달려있지만 사회와 타협하지 않았기 떄문이다. '그냥 (사회가 원하니까, 그렇게 해야 너가 편하니까,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렇게 해'라는 말이 뫼르소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룬 역시 뫼르소처럼 삶이 큰 의미가 없으며 우리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의미가 있냐고 한다. 하룬이 뫼르소를 원수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둘은 닮아있었다. 자기 이야기만 하며 정작 무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똑같다.이래 저래 무싸는 외로웠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읽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강추고 뫼르소, 살인사건은 이방인을 읽고 아랍인의 가족에 대해 궁금하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지만 추천은 아니다. 그냥 누구에게나 서사는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작가는 억지로 부조리를 넣어보려고 했지만 조금 억지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좀 있다. 이방인을 좋아한다면 그러한 부분들이 더 억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서사는 있다.
이 말이 뫼르소와 닮은 하룬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싸는 어디에서도 이용만 당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