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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10. 2017

나도 누군가에게 문화다.


우리 아이들
별 좀 보여주세요!

 초록잎이 노오란 물이 들어 떨어지던 가을날이었다. 평소 친했던 도서관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간만의 통화에도 뭐가 그리 급한지 본론부터 쏟아냈다.


 [즐거운 지역 아동 센터]라는 공부방인데, 문화적, 교육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곳이에요. 별을 너무 보고 싶어 하는데, 뭘 알아야 알려주지. 나는 내 생일 별자리도 잘 모르는데. 와서 아이들 별 좀 보여줘요. 아참, 그동안 잘 지냈지요?


 안부 한 자락 없이 시작한 통화는 끊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위치가 어디예요?"

"당진 2리요!"

"당진 2리요...? 거기에, 그런데가 있어요?"


하, 당진 2리라면 버스라곤 하루에 고작 다섯 대에, 걸어서도 한참을 가야 하는 곳이 아닌가. 소위 말하는 완전 깡시골.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문화적 혜택을 전달한다는 거지? 의문 반, 의심 반. 망원경 2대를 차에 넣으며 말했다.


이번 주에 갈게요.

소외된 농촌 아이들을 위해 개설된 즐거운 지역 아동센터. - 경기도 여주시 위치.

 두 시간을 내달려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산속'이었다. 차가 한 대 씩 밖에 못 지나갈 좁은 도로에, 불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만하면 웬만한 천문대보다 지리적 조건이 좋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외진 곳을 홀로 가다 변을 당하던데, 괜히 움찔움찔.


 이런 곳에서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니, 다양성이나 깊이가 불 보듯 뻔하다. 도시인들에게 '문화적 혜택'이라 하면 공연이나 예술, 문학, 기타 취미쯤이겠지만, 이 아이들에겐 이따금씩 찾아오는 '누군가'다. 사람이 문화고, 그 사람에게 묻어오는 콘텐츠가 혜택이다. 이 순간은 나도 누군가에게 문화다.


 그런데 잠깐, 이렇게 시골 아이들에게도 별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시골애들은 별만 보고 사는 거 아냐?

별이 가득한 시골의 밤하늘 - 별자리를 찾기가 더 힘들다.


아는 만큼 보인다


 누가 말했는지 몰라도, 밤하늘에 있어서 이 말은 진리에 가깝다. 철저히 아는 만큼만 보인다. 캄캄한 시골에서도, 별 빛이 홍수 같은 몽골에서도, 모르면 그 흔한 북두칠성조차 찾기 힘든 게 이 바닥이다. 그러니 별자리야 말해서 무엇하랴. 아무리 시골 아이라도 밤하늘엔 완전히 까막눈이다. 낫 놓고 모를 기억자는 밤하늘에 가득하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다. 두 시간 남짓이었다. 한 시간 정도 별자리 이야기를 했고, 나머지는 함께 별을 봤다. 초록 레이저로 밤하늘을 그리면, 아이들은 저마다의 우주를 떠올렸다. 손톱만한 렌즈에 펼쳐진 보석 같은 빛들엔 탄성으로 답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이 휘둥그레, 작아질 줄 몰랐다. 오길 참 잘했다.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정말로 M자 모양이에요!"

"토성의 고리가 꼭 돼지코 같이 보여요~!"


 영화 한 편 보다 짧은 그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의 눈이 별 빛 보다 총총해졌다. 글을 모르던 아이가, 글을 배워 처음 동화책을 읽은 듯 즐거워했다. 별 아래 살던 아이들에게 밤하늘을 알려주자, 별은 아이들에게로와 꽃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부족한 건 오직 하나였다. 돈도, 꿈도 아닌 '선생님'. 겪어 본 적 없는 것들을 알려 줄 누군가. 아이들의 눈빛을 본 순간 다짐했다. 내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별 관측과 강의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연락을 기다립니다.
bthink1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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