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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r 04. 2017

UFO가 나타났어요!

퇴근길 서쪽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7시쯤이었다. 한 아이가 헐레벌떡 천문대로 뛰어 들었다. 그리곤 누군가를 애타게 찾듯 연신 좌우를 살폈다.그 모습이 마치 어미새를 잃은 아기새 같았다. 불안해 보였다. '큰일이 났구나!' 싶어 뛰쳐나오니, 다짜고짜 큰 소리로 외쳤다.


UFO가 나타났어요!
밝게 빛나는 금성 ⓒ 판교 어린이천문대 신용운 강사


 퇴근길에 서쪽 하늘을 본 적 있으신지? 하루를 치열하게 버티고 나면 주위에 시선을 주기가 참 힘들다. 저녁엔 특히 더 그렇다. 그럼에도 하루의 무게를 견뎌 하늘을 본 적이 있다면 분명 무언가를 보게 된다. 반은 산이요, 반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에서도 유난히 밝은 무언가가 눈에 띈다. 해가 진 서쪽에서 보이는 그것은 바로 금성이다.


 한 번도 금성을 본 적이 없다면 그 밝기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지구의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 별'보다 15배나 밝기 때문이다. 웬만한 도시의 네온사인에도 빛이 죽지 않는다. 이쯤 되니 별처럼 보이지 않을 법도 하다. 천문대에 부리나케 뛰어들어온 그 아이가 본 것은 사실 이 금성이다.

 자신이 본것이 ufo가 아니라 금성이라는 설명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하는 걱정이 '우와!'하는 감탄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완전히 납득했다는 표정은 덤이다. 천문학을 가르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의 시선과 지식을 바꿔 놓은 이 순간.

하굣길, 하늘 한번 쳐다보기 힘든 아이들의 삶


 그렇지만 속은 조금 쓰렸다. 금성에게도 감정이 있다면 분명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금성이 그곳에 있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세 달째다. 해가 지고 나면 늘 서쪽 하늘을 차지했다. 태양이 없는 자리에 왕처럼 군림한 지 세 달이 지났건만 이제야 눈에 띈 것이다. 아이들이 진 학업의 무게는 지구를 빛추는 무언의 별 빛 보다 빛났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내 삶이, 그리고 아이들의 하루가. 오늘은 한번 시도해보자. 퇴근길, 우리를 타고 있는 하루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넘어간 노을의 방향을 바라보며 외롭게 빛날 금성을 바라보자. 그리고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거든 자신 있게 대답하자.


저건 금성이라고
UFO는 아니니 안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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