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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r 10. 2017

<낮 회식>을 아시나요?

일찍 출근해서 회식을 한다는 것.

 일찍 출근 하는 걸 좋아하는지? 이게 뭔 헛소리냐 싶겠지만, 천문대엔 한 달에 한번 일찍 출근하는 날이 있다. 오후 세시가 정규 출근시간이지만 이 날 만큼은 무려 두 시간이나 일찍 모인다. 그것도 매우 밝은 표정으로. 무엇이 이른 출근도 즐겁게 만든 것일까?


(혹시, 오후 세시던 한시던, 그 시간에 출근하면 제 표정도 밝겠어요! 라고 생각하셨다면, 꼭 그렇게 부러울 만한 일은 아니에요. 늘 밤 12시에 퇴근한다고요!)


 어쨌든 일찍 오는 이유는 바로 회식 때문이다. 천문대가 시골에 처박혀있는 탓에, 밤 12시에 퇴근을 하고 나면 문 연 곳 이래 봐야 꼬치집과 치킨집 단 두 곳이다. 가끔 삼겹살 집이라도 열려 있으면 한양에서 진짜 김서방을 찾은 것처럼 반갑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퀄리티 떨어지는 밤 회식을 하느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낮 회식을 하는 게 낫겠다고 의견이 모였다. 모두들 흔쾌히 자신들의 두 시간을 써가며! 

 회식장소는 보통 직원들이 정하는데, 이 때문에 회식 전 날의 풍경은 100분 토론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봄이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 아직 찬 바람이 시베리아 기류를 통해 넘어오고 있습니다. 아직 신선한 회를 얹은 초밥의 계절이란 뜻이지요. 일식집으로 가시지요."
"어허, 국제 정서와 민족적 감정을 생각해 볼 때, 일식집은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대통합을 이뤄야 하는 이 시점에 모두의 기호를 맞추려면 아무래도 뷔페가 제격인 듯 하오만."
"쯧쯧쯧, 뭘 모르시는 말씀. 자고로, 인간의 몸은 늘 계절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계절의 기운을 담은 음식을 먹어야 자연에 섭리에 마땅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봄철에 어울리는 중국음식으로 가시지요."
"!?!?!? "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 다섯이 모여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토론을 시작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비슷하다. "야 그럼 그냥 다들 집 중간쯤에서 먹자!"며 노원구나 중랑구 쪽에 식당을 잡는 것이다. 하루 전 회식의 장소와 메뉴를 정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 된다.


 낮 회식의 장점은 생각보다 많다. 출근 전 회식이라 술을 마신다거나, '해 뜰 때까지 마셔!!'따위의 무리함이 전혀 없다. 그저 정갈하고 맛난 식사를 따뜻한 햇살과 함께 즐길 뿐이다. 초록한 기운이 땅에 찾아올 때, 카페테라스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커피타임도 회식의 일부다. 


아 물론 단점도 있다.

천문대 수업 일정상 저녁밥을 오후 5시 정도에 먹는데,

낮 회식을 하는 날엔 배가 불러 보통 저녁은 거른다.

그러면 퇴근할 때 쯤 매우 배가 고프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 느끼는 배고픔은

괜찮게 참아진다는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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