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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r 14. 2017

가장 무서운 계절

봄봄봄, 봄이 왔어요.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천문대는 늘 봄을 정통으로 맞는다. '정통으로 맞는다'는게 무슨 말인고 하면, 그 어떤 곳 보다 봄의 정취가 짙다는 말이다. 주변을 둘러싼 청청한 나무와 꽃들은 마치 무지개 같아서, 형형색색의 빛들이 저마다 귀하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게 되는 청초한 여인 같다. 벚꽃은 또 얼마나 흐드러진지 산들바람이 찾을 때면 꼭 무대 피날레 장면 같다.

 게다가 천문대의 봄은 유난히 길다. 산 안쪽에 위치한 탓에, 평균 기온이 근방의 도시보다 2도 정도 낮기 때문이다. 2도는 도시와 2주의 시간 차이를 만들어낸다. 모든 것이 2주가 늦다. 얼음이 녹는 것도, 벚꽃이 지는 것도 모두 보름이 늦다. 때문에 도시에서 벚꽃이 끝났다며 여름을 준비할 때, 천문대의 봄은 여전히 한창이다. 이곳이야 말로 '벚꽃 엔딩'의 소산지다.

 


 봄이 두려워요

 하지만 주변의 풍광과는 달리 '봄'은 천문대에게 가장 무서운 계절이다. 별 관측에 지독히도 안 좋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은 꽃을 피게 하지만, 구름도 피게 한다. 덥혀진 공기의 반항이다. 때문에 봄만 되면 수려한 하늘 대신 가득한 구름을 경험할 수 있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겠지만요.)

 설령 날씨가 맑다 해도, 봄철 밤하늘에는 볼게 별로 없다. 별자리의 개수도 적거니와 망원경으로 볼만한 대상이 많지 않다. 자칫 지루한 밤하늘이 전달될 수 있다. 때문에 봄에는 늘 만발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나마 봄만 되면 구세주처럼 떠주는 행성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 달에 관측할 대상은 목성이야!!"

"우와!! 목성!! 진짜 보는 거예요!?"


하다가도 세 달쯤 되면,


"오늘 볼 천체는... 바로... 목성!!!"

"또 목성이에요? 벌써 두 번이나 봤잖아요, 목성 말고 다른 행성 보여주세요!!"

".... 그럴 수만 있다면.. 다른 행성을 줄에 걸고 당겨서라도 보여주고 싶다 ㅠ.ㅠ"


 로 변한다. 봄의 밤하늘은 모든 것들이 생동하는 땅의 것들과는 차이가 있다. 빈 밤하늘의 무료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우주를 만난다. 꼭 수려하고 화려한 것만이 우주의 모습은 아닐 테니까.


 봄의 양면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쩔 땐 참 고달프다. 어느 것 하나 맘 놓고 즐길 수가 없다. 햇볕이 좋은 날은 밤을 걱정하고, 맑은 밤하늘의 낮은 봄의 정취가 숨 죽는다.

 그럼에도 나는 봄이 좋다. 피어나는 꽃만큼이나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되어서인지, 따듯한 날씨가 좋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도 꼭 봄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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