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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06. 2017

01. 천문학자가 될래요.

 LA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구름

 1994년, 미국 LA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세상은 암흑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날 시민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난생처음 본 무언가가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이다. 곧이어 911 신고센터에 주민들의 신고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위 하늘에
이상한 구름들이 떠있어요


경찰과 소방당국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LA 주민들이 본 것은 별로 가득 매워진 은하수였다. LA 시민들은 어둠이 내린 그날, 난생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다.


쪼쪼쌤  애들아 너네 은하수가 뭔지 알아?
학생 1  당연하죠. 견우와 직녀가 일은 안 하고 맨날 사랑만 해서 옥황상제가 둘 사이에 놓은 큰  강이잖아요!
쪼쪼쌤  우와, 잘 알고 있구나! 그럼 혹시 은하수에 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도 아니?
학생 2  그럼요!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먹이려다 뿜어져 나온 헤라의 젖이잖아요. 그래서 이름도 우윳길, 밀키웨이라고요!

쪼쪼쌤  우와, 너희들 정말 많이 아는구나. 근데 혹시 실제로 본 적 있어?
학생 1,2  네? 은하수가 실제로도 있다고요?


 내가 가르치는 보통의 아이들(주로 초등학생)은 밤하늘을 글로 먼저 배운다. 자신의 생일 별자리나 은하수에 관한 전설을 줄줄 꿰지만 실체는 모른다. 심지어 있는 줄도 모른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 위 실재하는 은하수를 두고도 책 속 이야기만을 담아낼 때 나는 안타까움이 든다. 밤하늘을 경험한 적 없는 아이들이 별을 좋아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별 빛 아래서 뛰어놀던 기성세대의 하루는 말 그대로 옛날 얘기가 되었다.


 언젠가 수업 중 한 아이가 "쌤은 왜 별을 좋아하게 됐어요?" 하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왜 좋아하게 됐을 것 같아?"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시골에 살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하고는 웃었다. 그 순박한 질문에 "쌤이 그렇게 시골사람처럼 생겼어?" 라며 함께 웃었다.

 사실 나는 시골사람이 맞다. 지독히도 촌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땐 전교생이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까맣게 탄 얼굴을 하곤, 까맣게 탄 고구마를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추억을 나눴다. 당연히 우리들 위론 흐드러진 별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별에는 무관심했다.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이 오징어배를 보고 '우와!'하지 않는 것처럼, 시골에 사는 나도 별을 보며 놀라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집 앞의 소나무 같은 존재였다. 늘 익숙하고 평범한. 언제나 존재하는 게 그저 당연한.

 그러니 시골에 살아서 별을 좋아하게 되었냐는 아이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무엇이든 좋아하려면 계기가 필요하다.



 내게 그 계기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가는 견학 날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어디로 견학을 가는지도 모르는 채 오후 6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어딜 가길래 집에도 못 가게 하고 밤에 견학을 간다는 거야!"라며 볼멘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를 실은 버스가 덜컹 덜컹이며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천문대였다.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세종 천문대'였다. 망원경과 내 키는 농구 골대와 농구공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망원경과, 플레니타리움(가상 별자리 관측소)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조금 있으니 등산복을 차려입은, 조금은 어수룩한 남자 강사님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자 여길 보세요!"하고는  레이저를 허공에 쏘기 시작했다. 흡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별자리들을 초록빛 지휘봉으로 휘져었다.

 "우와!!!"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월드컵 골 장면처럼 탄성이 나왔다. 그 초록 레이저를 따라 보면 거짓말처럼 별자리들이 나타났다. 세상에, 광선검이 실재했다니. 스타워즈의 광선검 보다 영롱한 그날의 불빛은 나를 그렇게 밤하늘로 끌여들였다. 그날 나는 난생처음 목성과 토성을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 '환상적'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을 꿈으로 삼는다. 물론 어떤 것이 환상적인지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환상적일 수도 있고, 어떤 분야든 최고가 되는 것이 환상적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웃기는 것에 환상적임을 느끼곤 한다. 세상의 환상적임은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다.

 나는 그날 밤하늘이 환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주는 광활함과 아름다움이 그랬다. 손톱만 한 망원경의 렌즈로 우주를 내다보았을 때, 그 좁지만 사실은 너른 시야가 멋졌다. 돈을 벌지 못해도, 밥을 먹지 않아도 그것이면 족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물론 조금 다르지만 어린날의 나는 그랬다. 그래서 결심했다.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이런 환상적인 우주를 매일 바라보며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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