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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08. 2017

밥은 먹고살 수 있는 게냐?

어머니께서 주신 책 한 질.

그거 하면,
 밥은 먹고살 수 있는 게냐?


 조금은 흠칫한 아버지가 말했다. 두 무릎을 꿇어앉고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들 말에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아버지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답했다.


"몰라요"


 사실이었다. 그저 밤하늘이 좋아서였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나, 돈을 얼만큼 버는지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의 서툰 꿈이었으니까.

 아버지의 "그래 알았다"를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어떤 충고나 당부도 없었다. 다소곳이 계시던 어머니도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두 분의 표정은 마치 9시 뉴스를 볼 때와 비슷했다. 고요했고, 조금은 불편해 보였다. 당찬 아들의 꿈 고백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단 세마디로. 내 얼굴에는 섭섭함이 돌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먼저 꿈을 이야기한 게 처음이었다. "너는 커서 뭐가 하고 싶니?" 하고 물을때마다 늘, "가수요" 혹은 "축구선수요" 하고 답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래, 열심히 하면 꼭 그렇게 될거다"하고 공식처럼 말했다. 그런 약속 대련 같은 대화가 어린 시절 내내 이어졌다. 물론 가수나 축구선수가 정말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대화를 빨리 끝내는 지름길임은 알았다.

 그래서인지 무언가가 '진짜로' 되고 싶어 졌을 때 '부모님은 어떤 반응일까?'하고 기대됐다. 처음으로 표현한 진심이니까. 하지만 미지근한 세 마디로 대화가 끝나자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나의 꿈이 부모님을 뿌듯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부모님과는 '천문학자'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무덤덤함과 어머니의 침묵이 낯설어서였다.

 일주일 뒤였다. 띵동, 혼자 있는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보통 택배는 부모님 직장으로 배달되는데 그 날은 집으로 왔다. 심지어 수취인이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뭐지?. 택배 아저씨가 쿵! 하고 내려놓은 상자를 낑낑거리고 거실까지 끌었다. 상자에는 '칼로 뜯지 마세요'하고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링링링, 짧은 손톱으로 겨우겨우 상자를 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택배 왔지? 선물이야."


택배는 내게 온 게 맞았고, 그 안에는 정말로 선물이 들어있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우주 이야기 전집이었다.



 부모님은 말 대신 책으로 꿈을 응원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정이었다. 책은 몇 달 동안 손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었다. 고향 집 책장 한켠엔 너덜너덜 해진 전집이 여전히 꽂혀있다, 그날의 추억을 머금은 채로.

 그 날 이후, 나는 줄 곧 생각한다. 언젠가 나의 아이가 무언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면, 9시 뉴스를 볼 때의 표정으로 "그래 알았다"고 말하겠다고. 그리곤 가만히 책 한 질을 선물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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