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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12. 2017

선생님은 어떠니?

 고3 때였다. 한 번은 지구과학 선생님이 수업을 중지시켰다. 내게 "너는 꿈이 무엇이니~?"하고 물은 후였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요." 하자, "그래!?" 하고는 모두에게 "잠깐만 자습하거라"하고 하셨다. 그러곤 의자를 가지고 교탁 앞으로 오게 하셨다. 모두에게 주목과 곁눈질을 받으며 갑작스러운 상담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선생님 왜?

 별이 좋아요. 밤하늘에 대해 더 공부해 보고 싶어요.



선생님의 표정은 오묘했다. 잠깐 눈썹이 꿈틀거렸다. 과거의 무언가가 눈 위를 치고 지나간 듯했다. 선생님은 흠, 하고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더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선생님 사실은 선생님도 어렸을 적 꿈이 천문학자였단다. 그래서 천문학과에 들어갔지. 그곳에서 별과 우주에 관해 배운 적이 있단다.

우와, 어떠셨어요!?

선생님 응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 그런데,

그런데요?

선생님 천문학과는 미래가 없어. 학계도 너무 좁고, 천문학자가 되는 것도 아주 어렵지. 취업의 문턱도 좁아. 그래서 선생님도 지구과학 교육과로 과를 바꿨단다. 그래서 지금 너희를 만나고 있지.

네...

선생님 혹시 지구과학교육과는 어떠니? 천문학과를 꼭 가야겠니?

네?


 상담을 나눈 직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천문학과에 대한 미래나 비전이 암울해서가 아니었다. 천문학과에 발을 담갔다 전향한 누군가를 만나서도 아니었다. 그저, "천문학자가 될래요!"라고 말한 학생에게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태도가 충격적이여서였다.

 물론 선생님의 진심은 이해가 간다. 자신이 겪어본 가시밭길에 제자를 넣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어렵지 않게 살아나가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도 이해한다. 제자의 꿈을 밟고 싶은 선생님이 누가 있으랴. 어쩌면 선생님이 가장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날의 대화는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꿈을 포기하라고 강요받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내게는 바위 같은 꿈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달걀 같은 꿈이었나 보다. 부서질 듯 위태위태하게 보였을 지도. 어쩌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천문학'은 그 정도가 아닐까.


"천문학 그거 얼마나 알아주겠어?"

"그거 나오면 뭐 취업이나 된데?"


 다행히 밤하늘에 대한 사랑이 꽤 단단했는지 크게 고민하진 않았다. 소리 없이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그저 묵묵히 단계를 밟아갔다. 작지만 몇 번의 파도가 지난 뒤, 결국 천문학과에 입학했고, 누군가 말한 작고 좁은 무리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취업의 문턱을 넘어 천문대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아이들과 별을 보면 무한한 행복감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도 좋아하기 때문인지, 아이가 별을 좋아하도록 만든것 같아서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감격과 비슷한 감정이 별 빛 아래 든다. 그러다 보면 가끔 어린 시절의 그 상담이 떠오른다. 그리곤 생각한다. 혹시 내가 지구과학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지금처럼 행복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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