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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15. 2017

커플 제조기, <천문학과>의 비밀.

 천문학과에는 유독 C.C(캠퍼스 커플)이 많다. 한 학년에 적게는 30명, 많아봤자 70명 정도뿐인 천문학과 안에서 사랑이 그렇게나 피어오른다. 200여 명이 넘는 다른 과보다 커플의 수가 훨씬 많으니, 비율로 따지면 실로 어마어마하다. 천문학과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가. 무엇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가.


천문학과에 사랑이 넘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를 공개한다.


1. 로맨스 넘치는 수업

 4월 말이었다. 중간고사를 한 주 앞둔 때였다. 벚꽃은 왜 꼭 중간고사를 앞두고 피는 건지, 모두들 흩날리는 벚꽃잎을 원망하고 있었다. 시험기간인 탓에 마음껏 꽃놀이를 할 수도, 그렇다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엔 '사느냐 죽느냐'보다, '벚꽃을 보느냐 마느냐' 진정 그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이성과 감성의 골이 깊어갈 무렵, 교수님이 강의실에 오셨다. 1초의 지각도 없이 늘 칼 같은 걸음의 교수님이었다. 뚜벅뚜벅 갈색 구두를 신고 들어오신 교수님은, 창 밖을 한번 보시더니 씨익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벚꽃이 이쁘네, 
꽃구경이나 갈까?

 대학 입학 전 상상해 왔던 캠퍼스 생활은 어떤 모습이었나? 아마도 푸른 잔디밭에서 김밥을 까먹는다거나, 벚꽃 아래서의 야외수업과 같은 낭만적인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그려온 '영화'같은 캠퍼스 생활은 말 그대로 영화 속 이야기다. 실제로는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

 하지만, 내가 다닌 모교의 천문학과는 매년 그 영화를 찍었다. 매년 봄이 되면 한 번쯤 꼭 야외수업을 갔다. 흐드러진 벚꽃잎 아래서 출석체크를 하기도 하고, 잔디밭에 앉아 김밥과 맥주를 한 캔 하기도 했다. (물론 수업 진도는 추가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별 여행을 떠났고, '별밤 축제'라는 자체 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것이 천문학과가 가진 로맨스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녹은 땅에서 꽃이 피듯, 사랑도 언제나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피어나지 않을까?


2. 님도 보고 별도 보고. <관측 전>

"오빠, 오늘 날씨 좋던데~ 별 볼까요~?"

"아 그럴까~?"

"네, 망원경 빌려 놓을게요"

"그래, 그럼 관측 전에 밥이나 같이 먹자~"

"좋아요!"


 이런 꿈같은 대화는 천문학과의 보통 일상이다. 천문과의 하이라이트인 별 관측 과제 덕이다. 과목에 따라 무려 한 학기 내내 관측이 있는 경우도 있다. 별은 언제 뜨나? 밤에 뜬다. 밤은 언젠고 하면, 해가 진 후다. 해가진 후에 영롱한 별빛을 보는 것, 그것이 천문학과의 로맨틱한 과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함께할 시간이 많다. 그리고 이는 곧 잘 술자리로 이어진다. 필수적 데이트랄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스무 살 초반의 청춘남녀들이 해가 질 때까지 뭘 하며 기다린단 말인가. 공부?, 운동?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런 건강함은 우리네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술술술!

   달이 밤 8시에 뜨는 날이면 저녁을 먹으며 한 잔 하고, 12시에 뜨는 날이면 12시까지 마셨다. 달을 벗 삼아 술을 마시던 '이백'의 정기를 가장 잘 받은 사람들이 바로 천문학과 학생들이다. 자연스럽게 함께한 시간들은 데이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사랑도 첫 데이트부터 아닌가. 


3. 별 빛 보다 눈 빛. <관측 과제>


그렇게 한잔 후 바라보는 별빛은 전쟁도 쉬게 할 만큼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감성 폭탄을 맞는다. 상상해보자. 어두운 밤, 청정히 뜬 달 아래 두 남녀. 조금은 들뜬 기분과 서먹한 감정이 그 주위를 맴돈다. 거기에 노래라도 한곡 틀어놓으면... 큽, 이보다 더 사랑하기 좋을 분위기는 없다.

 이뿐이랴, 달과 별빛의 자연 조명빨(?)로 여자 친구들의 피부는 백옥 같아지고, 어둠 아래의 남자들은 왠지 듬직하다. '저 별은 너의 별, 이 별을 나의 별'따위의 말은 그 누구도 하지 않지만, 어두운 밤 달 빛 아래의 정취는 아무래도 애틋하다. 이러니 별 빛보다 눈 빛에 더 집중하게 될 수밖에. 천문과의 사랑은 얕아질 줄 모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플은 매 년, 매 학번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감정은 언제나 학과의 중앙을 흐른다. 늘 화두이자 이슈다. 모두가 반기는 이유는 하나다. 자연스럽고 행복한 감정이기 때문에. 


 별을 보며 키워가는 사랑,
생각만 해도 로맨틱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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