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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20. 2017

오늘 가도 돼요?

 내가 일하는 <어린이 천문대>는 보통의 천문대와는 조금 다르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관람 시설을 이용하는 천문대와는 달리,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예약하면 두 시간의 천문학 수업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한 달에 한번씩, 1년 동안 정기적으로 수업을 듣는다. 아이들은 매달 매달 정해진 커리큘럼과 주제 안에서 우주를 좀 더 꼼꼼히 배운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겐 아직 생소하고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설명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일단 문의 전화의 반이 "오늘 가도 돼요?"로 시작된다. 그러면 주구장창 설명이 시작된다. 예약제 팀 수업이며, 초등학교 아이들만 올 수 있어요. 팀을 짜오셔야 하고, 2시간의 수업 동안 수업료도 발생합니다.

 숨 가쁘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보통은 "아, 네"하면서 끊는다. 기대했던 천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끊지 않는 나머지 반도 수업료가 얼마인데요? 하고 묻고는 답변을 듣자마자 "에엑!?" 하며 놀라 끊는다. 하루에도 수어 번 안내를 하고 나면 정말 녹음기라도 틀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앵무새가 그리울 정도다.


 누군가에는 우주를 배우는데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게 느껴지나 보다. 뭐, 사실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가끔 선생님들끼리도 "별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게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며 웃는다. 밤하늘에 관한 수업과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기에 할 수 있는 농담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는 내게 종종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이를 테면 잡초뽑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엔 꼭 가벼운 일인체 하시며 일을 시켰다. "밭에 가서 물 좀 주고 올까?, 5분이면 돼" 하는 식이었다. 그래 놓고 밭에 도착하면 잡초를 뽑자고 하셨다. 무더운 여름날에 고개를 숙이고 나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해주지.

 그렇게 몇 번 밭에 나가고 나면 밭, 흙, 풀 따위의 것들과는 도무지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안 좋은 기억의 매개체처럼 쳐다만 보아도 괜히 이가 시큰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살 던 곳은 앞뒤 텃밭이 분주했고, 나는 떠날 수 없는 '전쟁터'에 패잔병처럼 남아 언제고 심부름을 해내는 이등병이었다. 상추며, 배추며, 따오라면 따가야 하는. 어린 나에게 '텃 밭'은 그런 쓸모없고, 고통스러운 전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가 우리 마을에 이상한 아저씨 한 명이 목격됐다. 분명 우리 마을에 연고를 두진 않았는데 이따금 나타나 누군가의 밭을 일구는 것이었다. 주말이면 서울에서 내려와 하루 종일 밭을 일구며 힘을 쓰다가, 저녁이면 뿌듯한 돌아가는 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말 농장'이라는 것이었다. 돈을 내고 잠깐 밭을 빌리는 것과 같았다. 일일체험에 그치지 않고, 잠깐 동안 직접 밭의 주인이 되어서 작물들의 커가는 모습을 주체적으로 보는 일이었다. 아니, 고작 그것을 위해 돈을 낸다니?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낸다니? 밭일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게 아저씨의 취미는 피카소의 그림 같았다. 이해할 수도,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아저씨의 이상한 취미는 얼마간 계속됐다. 어느 날은 가족끼리, 어느 날은 아저씨 혼자서도 밭을 일구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밀짚모자가 내린 초라한 그늘에 매달려 하루를 보내도 별 싫은 내색이 없어 보였다. 나는 무슨 영문인가 싶어 "도대체 왜 이곳까지 와서 밭일을 하시는 거예요? 집에서 화분을 키우면 되잖아요." 하고 물었고, 아저씨는 '별 놈 다 본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집안의 화분이나 베란다에서 키울 수도 있지만, 느낌이 다르단다. 무언가를 차근차근 배워 가는 느낌도 좋고. 진짜 시골에 와서 하니까 정말 농사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하루하루 이놈들(작물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비로소 자연을 느낀단다."


 

 나는 종종 그날의 대화가 생각난다. 아저씨가 품은 초롬한 생각이 나의 것과 그토록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 속에 있었지만 그것을 느낀 적은 없었고, 아저씨는 자연을 느끼기 위해 이리로 흘렀다. 그리고 나보다 몇 배는 더 깊고 열정적으로 자연을 느꼈다. '시골스러움'은 시골에 살 때 보다, 그것을 위해 깊이 노력할 때 더 다가온 다는 걸 그때야 조금 느꼈다.


 우주에 대해 '꾸준히' 배우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다르다. 시골에 산다고 우주를 더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찾고 배우는 아이들이 몇 배는 더 깊고 열정적인 우주를 느낀다.

  밤하늘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언제나 재생되고 있다. 가끔은 조용하기도 하고, 가끔은 전 세계가 떠들썩할 정도로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프레임은 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한다.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 예고편이나 포스터가 아닌 듯, 우주를 즐기는 방법도 그렇다. 한 번의 체험 정도로 그치면 생후 138억 년에 장대한 시간의 흐름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아이들이 우주에 대해 조금 더 차근차근 배우고 느끼는 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별을 보는데, 우주를 배우는데 시간과 돈이 든다는 것에 가끔 누구는 실망하고 누구는 불평한다. 한 달에 한번 씩이나 아이를 데리고 천문대에 가야 하는 것인가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랑스럽고, 부끄럽지 않게 권할 수 있는 이유는 아저씨와의 대화에 답이 있다. 천문대에서 하루하루 밤하늘의 변하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깊은 우주를 경험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늘도 천문대에 온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책 대신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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