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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26. 2017

"쌤! 오로라 본 적 있으세요?"

아이의 질문에 캐나다로 떠났다.

선생님, 오로라
본 적 있으세요?


 가슴이 철렁했다. "너희는 밤하늘에서 꼭 보고 싶은 게 뭐니?"란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한 아이가 역공의 질문을 날렸다. 그러곤 환상적인 오로라 이야기를 기대한다는 눈빛을 발사했다. 맙소사, 오로라라니. <꽃보다 청춘>에서 보긴 봤는데...

 이 정도 드문 일엔 당당해도 되련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다. 아이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밤하늘에 있어서는 빈 틈이 없어야 할 텐데, 부끄러웠다. 민낯을 처음 들킨 여자 친구의 심정이 처음으로 이해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8개월 뒤, 나는 세계 최대의 오로라 관측지인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서있었다.

옐로나이프 공항에서 바라본 태양

 옐로나이프 공항에 도착했다. 캐나다 북쪽 끝에 위치한 오로라 관측지인 옐로나이프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인천에서 밴쿠버, 밴쿠버에서 캘거리, 캘거리에서 엘로나이프까지, 세 번의 오랜 비행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땅 위로 간신히 매달린 태양이 붉은 석양을 힘겹게 하늘로 뿌리고 있었다.


벌써 저녁인가? 
얼른 저녁을 먹어야겠군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체크인에 저녁 장까지 보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스멀스멀 내려가는 태양에 마음이 급했다. 누군가 "서두르죠!"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공항 벽에 가엾이 걸려있던 헌 시계로 향했다. 순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곤 창 밖의 노을과 시계를 번갈아 확인했다. 시계는 고작 오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로라를 꼭 봐야만 하는 특별함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일차원 적인 아름다움을 외에도 특별한 점이 매우 많다. 오로라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세 가지 매력을 공개한다.

낯선 세상과의 만남

 오로라 관측지에서는 보통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오후 한 시에 태양이 눈높이에 떠있는 가 하면, 엉덩이를 씰룩이며 거리를 누비는 작은 개들은 북극여우다. 영하 30도를 가볍게 밑돌고, 골목골목 나무들이 온통 크리스털처럼 반짝인다. 수분이 꽁꽁 얼어붙어 가지에 코팅된 탓이다.

 보통의 오로라 관측지는 이런 낯선 환경에 있다. 밤 12시가 되어도 여전히 밝은 '백야'나, 아침 10시는 되어야 해가 뜨는 '극야'도 모두 오로라 관측지에서 만날 수 있다.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움을 만나는 순간 당신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다리며 쌓는 즐거움

 이 곳 옐로나이프에는 사람보다 호수의 수가 더 많다.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2만 개의 호수가 겨울 내내 꽁꽁 얼어있다. 얼음장 같은 호수 위에서 '님(오로라)'를 기다리고 있자면 마음이 한층 간절해진다.

 처음 오로라 헌팅을 갔을 때, 하늘엔 별 대신 구름이 가득했다. 구름을 좋아한 적은 도통 없지만, 그날따라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저 구름 뒤에는 오로라가 있을까? 구름이 없어지긴 할까? 답이 없는 질문들 사이로 거센 추위가 지났다. 구름이 비키길 기다리며 한기와 새침하게 맞섰다.


'얼른 나타나라, 제발 좀 나타나라'

(얼어 죽기 전에..)


 영하 30도에서 핫팩 '핫'하지 않았고,  방한화는 방한되지 않았다. 자동차의 히터가 찬바람으로 변하는 곳에서의 기다림. 영원 같던 시간 뒤 나타난 오로라. 그 순간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대학에 원서를 내놓은 뒤 받은 합격통보 같은 최고의 행복을 만들어낸다. 기다림의 마법이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자연은 기다림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다. 가만히 기다리던 짝사랑이 더욱 순수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실물 깡패 오로라


 오로라다!!


 어디선가 희미한 외침이 들렸다. 장전된 탄알처럼 자동차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 순간만은 우사인 볼트에 못지않았으리라.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드는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오로라다. 진짜 오로라. 사진 속에서 본 오로라와 실제 만난 오로라는 느낌부터 달랐다. 화면빨이 제일 안 받는다는 장동건을 실제로 본 느낌이랄까, 사진과 실물의 차이는 연극과 영화만큼이나 달랐다.

 하늘이 온통 녹색의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놀던 갯벌에 차오른 밀물처럼, 순식간에 녹색 빛이 범람했다. 그리곤 주름 진 녹색 커튼이 봄바람에 살랑이듯 춤추었다. 광활한 밤하늘은 오로라만의 단독 무대였다. 정지된 사진이 춤추는 오로라를 담을 순 없었다. 실물로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었다. 거대한 빛 구름을 눈 안에 담은 순간, 생각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영하 30도 아래에서도 심장은 누구보다 뜨겁다고.

 우주의 살아있는 생물을 마주한 후,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오로라는 전과 차원이 달랐다. 아이들은 생생한 오로라 이야기에 눈빛을 밝혔고, 깊어진 호기심과 관심은 또 다른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이 새로움을 상상하며 미소를 뗬다. 그리고 그게 나의 행복이었다. 그것들을 경험한 지금에서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오로라를 본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본다는 것 이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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