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현 Jul 11. 2017

제 와이프가 또 틀렸습니다.

 이런, 또 소나기다. 분명 예보는 맑음이었다.  예약자들에게, 날씨 예보가 좋으니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문자도 보내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두워진 밤하늘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두터운 구름이 방패가 되어 별 빛을 무자비하게 막고는, 화살 같은 빗줄기마저 쏘아대고 있었다. 적군을 코 앞에서 마주한 듯, 앞이 캄캄하다.

 가끔 보면, 밤하늘은 인간의 영역 밖이지 않은가 싶다.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슈퍼컴퓨터로 지난 수백 년간의 날씨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기상청도, 10년 베테랑의 대장님도 이 순간엔 넋을 놓아버린다. 별을 보여주는 일에는 가끔 '운'도 필요하다.



 강의를 맡은 대장님이 사람들 앞에 섰다. 평소라면 소풍이라도 온 것 마냥 시끌벅적하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다들 입을 닫고는 원망 한 자루를 표정에 담았다. 무슨 말을 쏟아도 꺼지지 않을 산불 같은 화가 사람들 사이에 번진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강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 대장님이 살금살금 입을 열기 시작한다. 또각또각, 사람들의 정적 사이로 대장님의 말이 지난다.


제 와이프가 기상청 직원인데요,
오늘 또 틀렸습니다.
하...
부부싸움... 예약입니다...



 진지한 사과와 함께 곁든 건 위트 있는 핑계였다. 심지어, 사실이었다. 기상청에 일하는 대장님의 부인이 이 대목에서 등장할 줄이야. (참고로, 대장님 부부의 금슬은 매우 좋다...) 비 구름 아래의 사람들이 조금씩 표정을 푼다. 10년 베테랑의 강의가 사람들의 입꼬리를 잡아끈다.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다.

  삐죽이는 입꼬리 주변으로 너그러움이 흐른다. 별을 보기 위해 찾은 천문대에서, 별을 보지 못했어도, 밤하늘을 배우며 즐거움을 느낀다. 어느새 돌아보니, 모두가 너털너털 웃음을 흘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쌤! 오로라 본 적 있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