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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27. 2017

백수처럼 보이는가

꿈은 낮에 이루어진다 <part 1>

 자주 가는 근처 헬스장 트레이너가 "지금이니 하는 말이지만, 고객님이 처음 헬스장에 왔을 때 많이 걱정했답니다."하고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예에? 제가 이상해 보였다고요?"물으니, "네에"하고 송곳 같은 정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까지 그런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듣고 보니 그렇것 같기도 하다. 20대 후반의 멀끔한 남자가, 머리에 제비집을 해가지고는 매일 10시 헬스장에 온다. 게다가 아줌마들과 홀로 섞여 스피닝을 하거나 그룹 운동을 한다. 그것도 깔깔대고 수다를 떨면서.


 "아무리 봐도 직장인 같은데, 매일 오전이나 점심에 운동을 오시니 백수인가 싶기도 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천문대에서 일합니다. 오후 출근이라 낮에 늘 운동에 오지요". 하고 답하니 아~! 하고 민망할 정도로 큰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눈까지 초롱해져서 "별을 보시는 분이라 원래 서글 서글 하신가 봐요, 아주머니들이랑 친하시던데"하고 재차 물었다. "천문대에 어머님들이 많이 오셔서... 직업병입니다"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는 이제야 퍼즐이 맞춰진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나는 그날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그렇게 신분이 상승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운동하는 시간엔 늘 아줌마들이 가득했다. 가끔은 몸 좋은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삭막한 공간에서도, 이른(?) 아침 나타난 내게 '쯧쯧, 저 청년은 어쩌다가..' 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럴 때면 '머리는 감고 올걸' 하고 핑계를 머리 위 제비집으로 댔건만, 사실은 백수 취급이었나 보다. 쩝.

 동화가 쓰고 싶어 동화작가 수업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강좌가 오전이라 시간이 맞았는데, 1년 코스에다 오전반이라 그런지 프리랜서나 주부들이 많았다. 20대는 고사하고 '남성'도 나 혼자였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그때도 함께 수업을 들은 아줌마들끼리 얘기가 많았단다. 뭐하는 청년인데 여기까지 흘렀을까?, 글을 쓰거나 예술적 감상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하고. 천문대에서 일하는 걸 밝히기 전까지 그들에게 난 여지없이 백수였다. 후에야 많이 친해져서 식사도 하고 별도 보여줬지만.


 늘 받아오는 백수 취급이 낯설지 않다. 가끔은 편하기까지 하다. 괜히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하고, 여기저기 신경도 많이 써준다. 안쓰러운 눈을 장착하긴 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덕분에 누군가의 역할 기대에 충족해야 할 필요가 전연 없다. 그저 원하는 것들을 묵묵하게 할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좋다. 낮시간의 행복은, 가끔 '백수처럼 보일 때'에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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