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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27. 2017

화살을 나누어 주세요.

 모든 것에 투정을 묻히고 싶은 감정이 든 것은, 호가든 생맥을 1L처럼 생긴 500ml 잔에 담아 연거푸 마신 후였다. 맥주를 딱 두 잔 먹고 나서였다.


 하루를 돌이켜보니 모두가 화살을 쏘고 있었다. 자신들의 속상함을 화살촉에 차곡히 묻혔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회사에 드는 냉랭함들이었다. 그리곤 날카로움 위에 얹어 힘껏 활시위를 당겨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과녁엔 내가 서있었다.

 그들이 품은 애석함이 나를 향해있진 않았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혹은 편안하다는 이유로 나는 그 화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모두 힘들어했고, 위로를 원했다. 모두가 돌 같은 투정을 내게 던졌다.

 나도 아직도 어리고, 조금은 모자란데 그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누구는 '회사가 너무 힘들어'했고 누구는 '일이 도통 구해지지 않아요'했다. 저마다의 무게가 자비 없이 그들을 눌렀다.


 내가 그들의 어려움을 품어낼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은, 그들에게 내가 '어려움을 토로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언제고 감사하며 복스러운 일이지만, 오늘은 꼭 그렇지 않았다. 나도 오늘쯤은 활시위를 한번 당겨보고 싶었다. 그 뾰족하고도 위협적인 화살촉에 이것저것 마구마구 담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하나뿐인 사장님은 내게 마지막 월급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더 바빠질 거고, 더 많은 벽이 있을 테고, 더 한 고독이 있을 거야.
어쩌겠냐? 인생이란 게 그러한 과정에 단단해지는 것이니 말이야.




 나비가 되기 위해 가장 힘든 시기는 작고 느린 애벌레가 아니라 번데기라 했다. 무엇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방비의 시기에는 한 번의 고통이 반드시 지난다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사귀였던 연인이 내게 '좋은 사람 콤플렉스'라며 뼈아픈 충고를 남긴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받아들일 순 없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어린 감정이 어렴 풋 기억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좋은 형이자, 좋은 선배이길 원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기보다, 나도 '그냥 사람' 이라며, 나도 '가끔은 힘든 사람'이라며 털어놓고 싶은 감정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벼운 한잔을 무겁게 들이켜며, 도통하지 않았던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달까. 나는 가끔 그렇게 '한 잔'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덧없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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