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기발하군.

by 조승현

부모님을 떠올리면 무언가 가슴 아프고 애잔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왠지 그렇지 않다. 그것보다는 '참 기발하셔...' 하며 무언가 꾀돌이이미지가 떠오른다. 흰머리로 채워가는 세월에도 건재한 약삭빠름이 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아버지는 내게 어두운 표정으로 "무엇이 문제냐"하고 물었다. 집으로 성적표가 배달된 후였다. 성적표에는 F 몇 개와 C 몇 개가 침울하게 적혀있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아버지의 화난 어깨쯤에 멈췄을 때 간신히 입을 벌렸다.


서울 애들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시골에서 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는 저와, 과외로 다져진 애들이 어찌 같겠어요."


물론 거짓이었다. 스무 살, 부지불식간에 얻어진 자유를 운동장과 술집에 쓴 탓이었다. 순전히 노력 부족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그저 "대학은 인터넷 강의 같은 거 없느냐, 좀 들어보지..." 하고는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죄송함을 철없이 느끼면서도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얼마 뒤, 도망치듯 군대로 떠났다.



퍽퍽한 2년을 보낸 뒤 돌아온 학교는 정말 꿈만 같았다. 그 날들이 꿀 같았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행복했다. 다시는 그 철장 같은 곳에 끌려갈 일이 없다는 게 로또보다 좋았다.

그렇지만 공부는 여전히 힘들었다. 2년간의 공백이 생각보다 으리으리한 탓이었다. 깨끗하게 청소된 두뇌는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1학년 때의 성적표가 이따금 악몽처럼 떠올랐다. 뚜렷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텅 빈 머리를 끈질긴 엉덩이로 채워야했다.


아버지의 꾀는 그 힘든 날들에 보석처럼 발현했다. 갑작스레 전화를 해서는 대뜸 일렀다.


인마, 어차피 네 등록금은 내가 내려고 했어.
그러니 혹시 장학금을 받으면,
그거 다 니꺼야.

한 푼도 빠짐없이 다.


아버지는 장학금을 받는 만큼 그대로 내게 입금하겠다고 했다. 한 푼도 빼놓지 않겠다고 몇 번을 장담했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등록금이 350만 원 정도였으니, 만약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 세 달에 350만 원을 버는 셈이었다. 이런 꿀 알바가 다 있나. '혹시... 뻥은 아니겠지... 아버진데...'

그 날 이후 엉덩이는 급속히 무거워졌고, '알바나 좀 해볼까?'하는 가벼운 고민은 정차 없이 지났다. 그저 우두커니 않아 소나무처럼 늘 푸르게 책에 눈을 부쳤다. 가끔 친구들과의 '한 잔'은 젊음 탓에 거를 수 없었지만, 그렇게 여름이, 또 겨울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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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복학 첫 학기 50% 장학금을 시작으로, 3학년 때부터는 등록금을 낸 적이 없었다. 단 한 명에게 주는 전액 장학금을 4학기나 거머쥐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인생 역전은 아니지만 학생 역전 정도는 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교수님들에게 '연구 장학생'으로 선택되었다. 간단한 강의 보조를 해주고는 한 학기 200만 원이나 추가로 받았다. 그것도 현금으로. 나는 그저 공부를 했을 뿐인데, 알바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돈이 지갑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차피 낼 '등록금'으로 아들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덕분에 성적 우수자로 졸업을 했고,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장학금으로 유럽, 미국 여행을 떠나게 됐고 한 층 더 성숙해진 눈을 얻었다. 여유 있는 지갑 탓에 꽤 비쌌던 복싱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몸도, 마음도 튼튼한 대학생이 되었다.

꾀는 압박보다 뜨거웠다. 윽박보다 달콤한 꾀가 인생을 바꿔내고 있었다. 많은 꾀들 사이에 살지만, 그날의 거래를 떠올리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음, 정말 기발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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