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잠들지 못하고는,

by 조승현

노래 하나를 켜놓고 30분을 멍하니 앉았다. 땅에서부터 올라온 노오란 빛의 스탠드가 나름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꼬은 채로 책상에 얹어진 다리 덕에 오른쪽 허리가 쿡쿡 쑤셔온다. 이제 그만 내려줄 때가 되었나 보다. '무언가 써지겠지'하며 골똘한 탓이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불면증이 답답하다. 무언갈 보거나, 피곤에 취하지 않는 이상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을 어떻게 자야 하는지 '잊은' 느낌이다. 어떤 식으로 자연스레 잠이 들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니 누군가는 찬물을 끼얹으며 억지스러운 아침을 만들 이 시간 까지도, 하루를 채 끝마치지 못한 채 애먼 자판만 탓하고 있겠다.

눈꺼풀의 무게가 한주 내내 함박눈을 받아낸 처마 같아도 침대로 향하지 않는다. 어차피 누우면 또랑또랑 돌아올게 뻔하다. 가끔은 별 생각이 다 들기도 한다. '내 침대는 잠을 깨우는 특별한 침대가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닌 게 확실하다. 이미 경험했다. 침대를 처음 샀을 무렵은 막 전역한 '파이팅'넘치는 시절이었다. 체력과 공부에 대한 열정이 창세기의 바벨탑보다 높았다. 하루의 반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나머지 반은 누구보다 열심히 놀았다. '공부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명확한 의지였다.


하지만 도서관 매점도 닫을 늦은 밤이 되면 마음속 작은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근하지만 아주 명확한 소리였다. '마지막 페이지는 집에서 하자! 누워서 하면 얼마나 편해~ 그간 고생한 허리도 좀 생각해 줘야지.'

그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앉아있기가 힘들다. 그러면 뚜벅뚜벅,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발놀림을 이고는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래 집에서 하자!, 하며.



결과는 뻔했다. 집은 참 마약 같았다. 한 번도 기약한 양을 채 마치지 못했다. 내 침대는 세상 어느 곳 보다 폭신했고, 어느 곳보다 안락했다. '절대 뒤돌아 보지 말라'던 하데스의 금기를 어긴 에우리디케처럼 침대는 나를 저 아래로 빨아들였다. 깊숙한 곳에서 나온 거역할 수 없는 손이 날 잠에 빠트렸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잠은 언제나 모자랐다. 반만 꼽힌 충전기처럼 가득 찰 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빠져나오기 싫은 곳이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여름날의 은행 안과 내 침대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침대는 나의 공간 중에서 가장 소중했다.


그랬던 공간이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등만 댔다 하면 잠겨가던 눈도 번쩍 뜨였다. 반쯤 누워 노트북을 허벅지에 얹혀놓고는 한세월을 보내기 일수다. 침대라기보단 책상에 가깝다. 누운 채로 아침해를 보는 일이 더는 놀랍지 않다.



가벼운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정신에서 보자면 내게서 가장 먼저 치워져야 할 것은 침대다. 공간, 가격, 성능 대비 최하의 효율을 내는 물건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퉁퉁하고 투박한 네모반듯한 침대를 치우고 이불을 놓으면 방이 두배는 넓어 보일 수 있다. 넓어진 방 한 구석을 '녹음실'처럼 꾸밀 수도 있고, 책장을 더 사 아늑한 '서재' 느낌을 낼 수도 있다. 작은 테이블을 하나 놓고 '홈 카페'느낌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공간의 재 탄생은 생활의 새로움과 연관이 깊다.



그럼에도 나는 침대를 없애고 싶지 않다. 작은 방안에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쓸모없는' 녀석임에도 '없앨까?'싶은 적은 없다. 그냥 원래의 자리인 것처럼, 날 때부터 그 자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있을 뿐이다.

언제 간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곳에 누워 하루의 피로를 날렸던 과거의 편안함을 못내 그리워하며, 잠깐의 역할 부진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대도, 어린 시절의 친구를 떠올리면 드는 그리움과 편안함처럼, 당장은 쓸모없고 스트레스에 얹어진 침대에도 그런 감정이 묻는다. 그리곤 가만히 기다려본다. 언젠간, 꼭 그날로 돌아가겠다며. 그녀의 품처럼, 닿으면 소리 없이 잠들 날이 오겠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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