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악마가 살고 있어요.

기보람...

by 조승현

띵똥, 사진 두 장이 핸드폰을 울렸다. 함께 사는 후배 K였다. 사진 속엔 보름달보다 동그란 피자 한판과, 태양보다 눈부신 치킨이 영롱했다. 띵동, 후배의 메시지가 사진 밑에 달렸다. "형, 빨리 와요!"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고향의 어머니처럼 무언갈 먹이지 못해서 안달이다. 특히나 다이어트를 할 때는 더 그렇다. 천사 같은 그가, 다이어트만 하면 악마처럼 느껴진다. 도무지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다. 누군가에 대한 판단은 역시 객관보다 상황에 결정된다.


K야 나 이제부터 다이어트다. 유혹하지 마라.

왜요? 갑자기! 어쩌다 그 험한걸!?

여자 친구가 복근을 주문했다. 대령하지 않으면 호~온 난다.

에이 형, 사랑으로 이겨내세요.

너를 이겨내고 싶다...


한참 실랑이가 이루어질 때, 함께 사는 또 다른 동생 D가 보름달 같은 배를 하고는 물었다.


"형 다이어트 시작했어요? 저돈데!"

"오, 진짜~? 형 뛰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좋아요!!"


후배의 배는 산달에 가까운 임산부 같았고, 뒤에서 보면 튜브를 착용한 아이 같았다. 그 작은(?) 오해를 풀겠다며 그는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시커먼 남자 둘이 신발장 옆에 털썩 앉았다. 호기롭게 신발끈을 동여매며 무언가 결연한 각오를 다졌다.

형광생의 러닝화와 검은 나이키 운동화가 각자의 주인 발에 끼워질 때, 꽤나 못마땅한 미소가 뒤통수에 꽂혔다. 후배 K였다. 그 이상하고 음흉한 미소는 나와 D사이를 맴돌았다. 그리곤 으스스한 분위기가 발 뒤꿈치에 꽂혀 함께 신발로 들어갔다. 아주 별로의 느낌이었다.

뜀.jpg

헥헥, K의 저주 탓일까. 3km를 채 뛰지 못했을 때부터 숨이 찼다. 오늘따라 발도 무겁고, 목이 말랐다. 맥주 한 캔이 못내 그리웠다. 트랙의 하얀 줄이 꼭 우동 면 같았다. 나와 D는 서로를 보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자는 신호였다.

평소보다 짧은 러닝 코스를 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D와 나는 스치듯 눈을 마주치고는 씩 웃었다. '하길 잘했다'는 의미였다. 짧게 뛰어도 누워있는 것보단 훨씬 나은 터였다. '복근'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받아 든 나로선 한참 모자란 결과지만 아무렴 한 발자국씩 해나가고 있었다.

다이어트는 배고픔을 동반해도 무언가 행복을 준다. 흐르는 땀방울이 꼭 노력 같다. 상쾌한 바람이 꼭 소풍 같다. 배는 고파도 모든 것이 행복했다. 하루의 마지막을 건강하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주 건강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5km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기진맥진하며. 헥헥, 숨소리가 계단을 넘어 현관에 다 달았다. 지침과 허기짐 사이로 문을 열었다. 문 넘어로 K가 씩 웃고 서있다. 무언가 기름진 향기가 코 끝에 찡하다. 아뿔싸, 당했다.



아주 편하고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숨숨 헥헥 몰아쉬었다. 아름답게 구워진 굴비 세 마리가 티브이 앞에 놓여있고, 얼음장보다 차가운 캔맥주가 그 옆을 채웠다. 굴비의 향은 치킨보다 향기로웠다. 아무래도 오늘도 진 것 같다. 나와 H는 꿀 같은 악마의 유혹에 감탄하며 앉았다. 그리곤 웃으며 말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다이어트는

조금 미뤄졌어도

아주 행복했다.

함께 추억을 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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