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아침

어느 도시가 가장 좋았나요?

by 조승현
어느 도시가 가장 좋았나요?

시애틀을 여행 중일 때였다. 다운타운으로 나가기 위해 탄 우버(유사 택시)에는 흰 수염이 덥수룩히 난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그는, 시애틀에서만 어느덧 10년이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왔다가 시애틀의 아름다움에 퐁당 빠져 돌아갈 수 없었다나 뭐라나. 시커먼 남자 둘의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아저씨가 물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시나봐요?"

"네, 종종 다니는 편이에요~"

"다녔던 곳 중 어느 곳이 가장 좋았어요?"

"지금 이곳이요!"

"시애틀요?"

"네!"

"왜요? 뭐 특별란 것이라도 있었어요?"

"글쎄요...스타벅스 1호점 텀블러...?"

시애틀의 야경

여행을 하다 보면 참 여러 사람을 만난다. 호스텔에 묵거나 동행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렇다. 여행지에서의 대화는 쉽사리 여행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어느 곳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은 인사치레처럼 잦다.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보통 이렇게 답한다. "지금 이 곳이요!'



사람은 현재에도 살고, 추억에도 살지만 어딘가로 떠난 여행에서는 항상 순간을 산다. 눈 앞에 펼쳐진 새로움이 일상에 숨 죽은 감각을 깨우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우버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딱 그런 도시다. 돈을 벌러 왔다가도 아름다움에 빠져서 눌러살게 될 만큼 '살고 싶은' 나라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고층 빌딩과 쇼핑센터가 아닌 '공원'에서 온다.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 보단 '여유'에서 살고픈 마음이 우러 나온다. 시애틀은 그런 공원과 여유를 동시에 품었다.


잠 못 이루는 도시의 아침은, 아주 쉽사리 잠을 깨운다. 따스한 햇살과 풍경 아래 적당한 온도가 집안으로 쏟아져온다. 햇살에 이끌려 나가 형광의 러닝화를 질끈 매고 뛰면 이내 눈부신 호숫가가 펼쳐진다.

이른 아침의 러닝은 몸을 깨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찬란한 호수 주위를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달리는 기분은 아주 쉬이 넘치는 행복을 부른다. 가을 날씨를 품은 8월의 시애틀은 그런 상쾌함을 품는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광장에는 탁구를 치는 연인과, 벽돌을 쌓는 아이들과, 테이블 싸커를 온몸으로 하는 도시인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책을 읽는 이도, 공연을 보며 조심스레 팁을 준비하는 노신사도 보인다.

언제, 누구와도 굿모닝을 말하는 사람들의 한가운데서, 그런 여유에 쌓여서는 꼭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고 읊조린다.

자연스레 흰 수염 아저씨를 떠올린다. 푸근한 인상으로 물은 그의 질문에 이제야 적당한 답을 찾았다.


특별한 것이요?
이른 아침 달리며 만난 사람들의 여유로움이요.
그 여유로움을 가지고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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