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당신에게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은 적은 없다. 영영 들어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들었다 치고 대답하자면, 내게는 컴퓨터다. 이유는 간결하다.
1. 책을 볼 수 있다.
2. 글을 쓸 수 있다.
책과 글은 누군가의 삶에 아주 중요하다. 내게는 특히 그렇다. 가장 마음이 편안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책과 글을 여행 중에도 놓지 않는 이유다. [책과 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컴퓨터가 최고예요] 하는 전개는 좀.. 이상한가요?
"웬 컴퓨터? 책은 종이책으로, 글은 펜으로 써도 되잖아요"하겠지만, 여행 중에 읽고픈 책들을 모두 들고 다니고 싶지는 않다. 해변에 앉아 무릎에 대고 엉망진창인 글씨를 써 내려가고 싶지도 않다.
책은 마치 영화 같다. 그날의 감정과 여유에 따라 보고픈 장르가 달라진다. 수백 권의 책을 이렇다 할 용량도 차지 않고 보관하는 e-book이 여행에 적합한 이유다.
저물어가는 노을에서도 불필요한 라이트를 켤 필요가 없다. 별 빛 아래서 촛불에 기댈 필요도 없다. 적당하게 밝고 은은한 밝기를 글귀에 묻혀 주는 고마운 컴퓨터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눈에 담아도 좋지만 글에 담아도 그만의 풍광을 지닌다. 사진에 경치가 담긴다면 글엔 감성이 담긴다. 아름다움 앞에서 풍경과 감성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해 질 녘 바닷가에 앉아 분홍과 빨강 사이 즈음으로 물들어가는 노을을 본다. 천 원쯤 내고 빌린 썬베드에, 모래를 장애물 삼아 넘는 아이들의 경쾌한 모랫소리 뒤에서, 파인애플 주스 한잔을 아주 감사히 마신다. 해가 바다 넘어 자취를 감추지만 어둠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자취 뒤로 여광을 남기며 구름 뒤로 붉은빛을 뿌린다.
평화로움은 개인에 기억에 의존한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안정된 순간을 평화롭다고 떠올린다. 이른 아침, 부스스 깨어 빵을 굽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평화롭지 않은 이유다.
보라카이 해변에 누워 어둠을 기다리며, 노을을 악기 삼아 감성을 연주하며, 또 다른 인연들과 다양한 아름다움을 새기고는 이를 평화롭다고 기록한다. 이따금 튀어 오르는 피곤의 기색도 편안함으로 한껏 누른다. 완전한 어둠이 내린 뒤에야 운동화 끈을 바로 맨다. 지금을 새길수 있게 해 준 컴퓨터에 고마움을 툭툭 치고는 가방 속에 고스란히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