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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Oct 18. 2017

니 맘대로 해, 이눔시끼야

 천문대에 입사하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부모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학자 아들의 꿈을 나직하게나마 가지고 있어서였다. 혹시 학비나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면 그만두기를 원했다. '공부하는 동안은 돈 걱정 말거라' 했던, 아주 복 받은 약속을 내가 먼저 깨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왜?"라는 질문에 나는 적절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 일을 하면 더 행복할 것 같아요." 하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걱정 마세요. 잘 할게요."하고 얼버무렸다. 이처럼 천문대 일은 가족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여러 일로 가족에게 전화를 받았다. 갖가지 경조사가 있으니 주말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가족에게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 교육업이자 서비스업(사람들이 천문대를 찾으니)인 나의 일은 금요일과 토요일까지도 평일이다. 토요일 밤 12시가 돼서야 평일이 종료된다.

 그래서 일요일이 되면 바로 가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금, 토는 천문대를 비울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실망이 섞였는지 원망이 섞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몇 년은 가족들의 큰 일과 멀어졌다. 일상은 한없이 평온하다가도 몇 마디에 어색함을 만들었다.

 어느 평범한 금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누이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 11살 차이 나는 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으나 자세한 건 잘 모르니 빨리 가보라 했다. 그런데 그날은 수업이 두 개나 있는 날이었다. 심지어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금요일, 토요일이라 수업이 많았다. 그래서 일요일이 되는 대로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누이는 그날도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곤 그저 그러라고 했다.

 그 날 내게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모두 웃으며 돌아갔다. 다들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지만, 정작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별로 기억이 없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정신이 없던 탓이다. 늘 하던 대로, 늘 웃기던 대로 수업을 했겠지만 요즘 말로 영혼이 없었다. 학생들이나 동생, 누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순간이다.



"원대(동생)은요?"

"천만다행이야, 그 큰 트럭이 쳐서 애가 붕떠 날랐는데도 다행히 별 탈이 없어".

"진짜요?"

"응, 다만 자전거는 박살이 나버렸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아버지는 다행히 동생이 무탈하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라며, 아들을 새로 얻었다며 하늘에 감사했다. 아버지가 보내온 자전거 사진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나는 동생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어수룩한 동생에 여보세요 소리에 다짜고짜 소리쳤다.  "살아줘서 고맙다 동생아, 공부고 나발이고 건강해서 고맙다".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미안함이 휘몰아쳤다. 이번에도 나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두고 가족과 상의한 적이 별로 없다. 집에 별일 없어요? 하고 습관처럼 물으면서도 정작 나의 중요한 일은 홀로 결정했다. 천문학자의 꿈을 접을 때도 "공부를 그만할까 하는데, 괜찮을까요?"가 아니라 "천문학자는 하지 않을래요"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나는 "알아서 잘 할게요" 하고 자주 말했다. 스스로 인생은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공동체로 묶인 가족을 등지는 것과도 같았다. 지금껏 도움을 받고 살아 놓고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소홀해져 가는 가족을 바라보며 조금씩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가족'에 대해 몇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듬해 고향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될지를 물었다. 가족, 금전, 비전을 모두 포함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이 무척 즐겁다고, 돈보다 행복을 버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비전을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모든 게 계획대로 대는 법은 없다. 허나 젋으니 더 부딪쳐보거라, 하고 말했다. 늙어서도 부딪치면 안 될까요? 하자 아버지는 웃었다. 그리곤 나름 따뜻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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