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잘 하고 와-

그래서 그는 나를 잘 안다.

by 조승현

최근 10년을 돌아본다. 누가 가장 나를 잘 알까? 나의 세 살 버릇을 여든이 넘도록 기억하실 부모님일까, 문 열리는 소리만으로 나의 허기짐을 맞추는 하우스 메이트일까. 일주일의 하루를 자연스레 가지는 연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민낯을 가장 많이 드러낸 친구들일까.


늦은 퇴근은 한 어느 날, 힘겹게 러닝을 하고 들어오자 같이 사는 동생이 말했다. "형, 오늘도 유혹을 이겨냈네요! 오늘도 무지 뛰기 싫었을 텐데요".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유혹을 이겼다며, 오늘은 야식을 먹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겠다며...


사람을 안다는 것은 상황보다 감정을 아는 것에 가깝다. 나는 '뛰는 사람' 보다, '간신히 유혹을 이기고 뛸 때 기뻐하는 사람' 일 때 더 잘 표현된다. 뛴다는 사실보다, 뛸 때 무엇을 느끼는지 아는 사람이 나를 더 잘 아는 것이다. 언제 일하는 것보다 일하며 느끼는 감정이 더 '그 사람'이며, 무엇을 잘 먹는지 보다 그 음식을 먹을 때 누구를 떠올리느냐가 그를 더 깊숙이 말한다.

햇살이 한 겹 따사로워진 날, 나는 조금 방황했다. 드라마처럼 날이 좋았고 날이 적당했다. 게다가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이었다. 하필 겨울이 끝나갔고, 하필 햇살이 떴다. 하필 수업이 없었고, 누군가와의 연락도 없었다. 하필 헤이즈가 앨범을 냈으며, 하필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근하지 못했다.

"조금 늦어요-"


함께 일하는 두 살 위의 동료는 나를 아주 잘 안다. 겨울의 끝자락을 조금 우울해하는 것도, 봄을 많이 타는 것도, 헤이즈의 음악을 들으면 어떻다는 것도 그는 알았다. 그래서 늦는다고 했을 때 당연한 듯 말했다. "방황 잘 하구와-". 그 안엔 무수히 많은 내가 담겨있었다. 난 그 한마디가 참 '나' 같이 느껴졌다.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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