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by 조승현

무언가에 미쳐 살았던 날이 있었다. 하루가 끝나면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글을 썼던 날이 그랬다. 밥을 먹으면서도, 음악을 들으면서도 무얼 쓸까 고민했다. 퇴근 후 강변을 달리며 '쓸 감을 떠올리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퇴근길에는 음악까지 꺼놓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써봐야지' 하며 들떴다. 정말로 미쳐있었다, 쓴다는 것에.


무엇에 미친 날들은, 온전히 그것만 늘어놓으면서도 하루가 짧았다. 무겁게 퍼붓는 비에 몸을 내맡긴 것처럼, 걸음과 걸음 사이의 시간이 꽉 차 버리는 것이다. 하루하루 글을 쓴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되어 거친 비 사이를 지났다. 그렇게 시간은 한 달로 묶인 듯 지났다.

글은 아주 많았다. '어쩜 이렇게 많이도 썼을까' 싶을 정도로. 똑 똑, 한 방울씩 샌 천장의 물이 커다란 고무대야에 가득 차듯 글이 쌓이자, 나는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글을 보았다.

내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조금 더 어렸던 내가 그날의 감정으로 써낸 하루를 읽는 것이다. 어떤 날의 나는 무척 순수했고, 어떤 날은 멍청했다. 어떤 나는 사랑에 미쳐 있었고, 어떤 순간은 위선적이기도 했다. 그즈음의 나는 별다를 게 없지만, 글에서는 그랬다. 나는, 그렇게 처음 나와 마주했다.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김민철 작가는 자신의 기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빛은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빛이었기에


과거의 나와 만난 어느 날, 어물쩡히 서서 그날의 나를 바라본다. 그 녀석은 이만큼 쌓인 글 위에 턱을 괴고 앉아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어 묻는다. 너는 어찌 그리 미쳐 살았냐고. 부끄럽진 않지만 조금은 부럽게 쳐다보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괜찮은 바'좀 계속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