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라서 다행이다

by 조승현

등산하듯 천문학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만난 ‘진짜 천문학’은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처럼 매서웠다. 만나는 모든 사유마다 물리와 수학을 품었고, 위대한 천문학자들의 업적들이 내 뒷덜미를 잡았다. 무엇 하나도 쉽게 이해되는 법이 없었다. 숨이 찼다. 허벅지에 힘이 풀렸고, 맥이 빠졌다. 첨단 문명을 살고 있는 나는 수백 년 전 과거의 이야기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그런 수준이었다. 천문학 산은 내게 너무 높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오르고 나면 탁 트인 정상처럼 새로운 시야를 주었다. 천문학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마다 기존의 낡은 우주는 해체되었다. 세상은 언제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숨겨진 우주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정신을 잃고 그 위를 떠돌았다. 그때 나에게 천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고작 성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철학에 가까웠다. 작은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틔워갔다.
하지만 여전히 어렸고 무지했다. 무엇을 조금 배웠다 한들 초라한 수준이었다. 주변에서 우주에 관해 물을 때마다 진리를 알고 있는 듯 행세했지만 잘난 척일 뿐이었다. 빈약한 지식을 말주변으로 덮었다. 철학에는 진리가 없다. 종교도 진리를 좇지만 인간은 모른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우주가 커지는 정도를 수치로 가늠할 뿐, 진리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믿었던 것은, 그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는 나였을 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천문학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어쨌거나 밤하늘과 살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과 함께라는 사실에.
만약 천문학자가 되어 연구를 하며 살았다면 나의 무재능에 혹은 열등감에 폭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머리에 이고 매일 날카로웠을 것이다. 보통의 회사원이 되어 살았더라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끝난 후에 지친 몸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살았더라면, 왜 천문학은 나의 일이 될 수 없는가 한숨으로 하늘을 채웠을 것이다. 별빛을 바라보며 아름다움 대신 절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황우석처럼 논문을 조작하며 결과에 목매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고, 별빛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과 함께라서 다행이다. 강사라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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