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 망했으면 좋겠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 김상욱

by 조승현

“소개팅한 남자, 공대생이었어”

“이과? 넌 문과잖아. 괜찮겠어?”

“글쎄, 괜찮지 않을까... 입력만 잘해주면 된다던데?”

“맞아, 애정표현이 부족해도 한마디만 입력하면 된데”

“어떤 말?”

“일주일에 10번 사랑한다고 해줘. 그럼 딱 10번씩 계산해서 해준다더라.”


최근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는 두 종족이 발견되었다. 그 종족은 철저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언어로 대화하지만 소통은 어렵다. 같은 문자도 다르게 생각하며 읽는다. 하나의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의]란 단어를 떠올릴 때 한 종족은 Justice를 생각하고 한 종족은 Define을 떠올린다. 이들은 문과인과 이과인으로 불린다.


미신이 자리잡기엔 힘든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의 지식 기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너 A형이야!? 잘 삐지겠네?" 하며 농담은 해도 혈액형만을 보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별자리 운세를 믿고 전재산을 투자하는 사람도 없고, 사주팔자대로 살아야 한다며 직업을 바꾸지도 않는다. 우리는 실타래보다 더 복잡한 시간들이 섞이며 성장했다.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성격을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과, 문과는 좀 다르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하나의 갈래를 선택해 공부한다. 그리고 이과와 문과의 학습 방법은 상이하다. 사고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수년을 보냈다면, 분명 경향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니 이과인과 문과인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논리적이다.


문과 : 시는 유리와 같아요. 햇빛이 비치면 여러 방향에서 다르게 빛나는 것처럼요.
이과 : 난반사인 건가?


위의 대화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첫 번째 댓글이 달렸다. “이과 망했으면 좋겠다." 그러자 본래의 글 보다 댓글에 더 많은 추천이 달렸다. 조금 비약을 보태 떠도는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문과는 섬세하고 감성적이지만 논리가 부족하고, 이과는 논리적이고 합당해 보이지만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니 이과 망했으면 좋겠다는 소리에 추천이 풍년인가 보다.

나는 이과인으로서, 이에 공감할 수 없다. 인간은 다양하고 독립적이다. 이과인이라 한들 어찌 공감능력이 다 떨어진단 말인가. 비약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내 모습을 본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이과 망했으면 좋겠다.



알쓸신잡으로 유명세를 탄 물리학자 김상욱의 책이다. 그는 물리학자를 하고 있을 만큼 철저한 이과인이다. 수십 년을 인과관계 속에서 살았고, 수학과 물리 속을 헤엄쳤다. 누구보다 뼛속까지 이과의 피가 흐를 것이다. 그의 상처에서 숫자와 물리학 기호가 뿜어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김상욱의 과학공부>에는 이과의 논리와 문과의 감성이 동시에 흐른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 한강으로 흐르는 것처럼, 감성과 이성이 책을 꾸민다. 책 속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 행복지수와 연결된다. 뇌과학은 아이의 행복이 맞닿는다. 달의 공전과 인간의 고통을 연관한 그의 고찰엔 인생을 바라보는 무게가 담겨있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서점에서 만났다면 절대 집고 싶지 않았을 재미없는 제목이지만, 부제처럼 그의 물리학엔 시가 품어져 있다. 이과, 안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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