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슬프게 울린 날의 조각

by 조승현

하루는 변함없이 흐르는데 어느 날의 조각은 한 없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유리장같은 하루가 산산이 깨어진 것 처럼.


여러 번 전화가 울렸다. 소리는 같은데, 저마다 울리는 무게가 달랐다. 액정 위로 이름이 떴다. J, S, W. 이름이 다른 세 사람은 각자의 눈물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받은 전화마다 별로 말이 없었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말보다 관계라던데,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일까 하는 불안함만 들었다. 정말, 끔찍하리만큼 아무 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슬픔은 힘이 세다.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사람에게 남겨진 기억도 결국 같은 결일 것일까. 겹겹이 쌓여진 감정을 걷어 내다 보면, 그 끝에는 슬픔이 고여있을 것만 같다. 가장 숨겨두고 싶은 기억이 가장 깊은 곳에 남겨진 채로.


“아빠가 너무 불쌍해”


해가 뜰 시간에 더 가까워진 새벽 전화벨이 슬프게 울렸다. 누나였다. 눈물이 이미 광대까지 찬 것 같은 불안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펑펑 울음을 내며 말했다. 아빠가 너무 불쌍해. 어떤 연유로 그녀의 맘이 심하게 뭉개졌는지, 그 때문에 전화기 위에 서러운 눈물을 쏟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제일 먼저 감당해야 했던 것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못하고 듣는 나의 표정이었다.


그녀는 호흡을 몇 번 가다듬었다. 여러 가지 아픔이 묻은 소리를 꺼내며, 이제 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J와 W도 그 말을 남기고 끊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별 생각 말고 자”하고 대답했다. 무언가를 덜어내자며 내어 놓은 말이었는데 꺼내면 꺼낼수록 어지럽게 엉키기만 했다. 가끔씩 말로는 도저히 매울 수가 없는 슬픔이 있고, 그런 것들이 쌓여 또 어딘가에 고인다. 그런 슬픔 위로, 나는 어떤 몸짓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