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을 선물로 줄래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하고 있어요. 다이어트요. 지난 몇 달은 정말 힘들었어요. 야식을 마주할 때마다 느낀 그리움과 아련함과, 한 입이라도 먹고 나면 느끼는 죄책감과 허탈감들이 뭉친 날들이었거든요. 몇 주를 참다가 한 번 야식을 먹을까 싶으면 친구들이 말했어요. "너 다이어트한다더니, 잘만 먹네?". 그럴 때마다 내 지난 과거에 그 친구를 통째로 던져 넣고 싶었지만, 어쩌겠어요. 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요. 그저 '오늘은 좀 먹으려고' 하면서 눈치를 보았죠.
오늘은 나게에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2%에서 시작한 체지방률이 14%까지 내려왔거든요. 누군가에겐 한자리 수에 불과한 8% 감량이지만 나에겐 지독한 몇 달이었어요. 닭가슴살 마법사가 따로 없었다고요. 매일 아침 퍽퍽한 닭 가슴살을 씹어 먹으며 시작한 하루는 닭 가슴살을 오물거리며 끝났어요. 우연히라도 닭을 보게 된다면 가슴을 보며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물론 제 혀와 턱에게 먼저 사과를 하겠어요.
아무튼 참 힘든 몇 달이었어요 어머니가 나를 나을 때 느끼신 고통이 이보다 심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까지만 해도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맥주 한 캔이 손에 들려 있었어요. 퇴근 후 맥주 한 잔은 꿀맛이잖아요.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맥주의 탄산을 타고 목 뒤로 넘어갔어요. 밤이 주는 외로움도요. 맥주는 그런 느낌의 술이에요. 뭔가를 넘겨내는, 이겨내는 느낌을 주죠.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로 한 오늘, 노란 조명이 예쁜 바에 들러 가장 좋아하는 밀맥주를 시켰어요. 세상에, 이 좋은 음료를 한 동안 못 마셨거든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고작 맥주 한 잔이라니, 완벽하고도 소박하지 않나요? 물론 맥주를 한 모금 머금자마자 페퍼로니 피자 한 판을 시켜서 다 먹었지만요. 결국 칼로리도, 소박함도 챙기지 못했지만 오늘은 그런 날인가 봐요. 나에게 선물을 준 날.
술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아요. 스트레스를 줄이는 대신 뱃살을 내어 놓는다는 것도 알고, 그 뱃살을 쳐다보며 다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죠. 소주보다 몇 배는 비싼 술 값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잔소리도 막지 못해요. 하지만 적어도 그날의 기분 정도는 말끔히 씻어 주잖아요. 그 정도라면 도톰해진 뱃살을 퉁퉁 튕기면서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잖아요.
뭔가 씻겨 내야 할 마음이 있다면, 혼자 바에 가서 맛있는 페퍼로니 피자와 맥주를 한 잔 해보도록 해요 어느새 뽀드득하게 씻겨지는 하루를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맥주 한 잔 먹고 주정뱅이로 오해받는 건 아무래도 억울한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