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가 되고 싶다.
나는 내가 루피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해적이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해적왕이 되겠다면서도, 순수하고, 동료를 향한 책임감이 강하고, 승부욕도 있는 사람. 목이 잘리기 직전에도 해적왕이 되지 못해 아쉬워하고, 한 우물만 파는 우직함에 결국은 해적왕이 될 것 같은 사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꿈을 떠올리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해적왕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해적왕 하면 루피를 떠올리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우직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쪼대장은 어째 잘 질리는 것 같아?”
어느 한가한 오후, 출판사 사장님은 내게 쉽게 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 출간을 축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당장 늘어놓을 수 있는 취미만 해도 독서, 글쓰기, 테니스, 복싱, 영어공부 등등, 몇 가지가 된다. 그 위에 “요즘은 헬스를 시작했어요”하고 말하니 단박에 쉽게 질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는 이유로 어느 것 하나에도 정통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5년 동안 쓴 책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얕은 한마디를 무겁게 걸쳐 메고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러게, 참 가지가지했네. 덕분에 무엇 하나도 가장 잘 하진 못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나이란 것은 참 쉽다. 맥주를 먹으려 해도 병뚜껑은 따야 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하려 해도 비밀번호는 입력해야 한다. 하다못해 호떡 하나를 먹어도 두어 번 호호 불어야 입천장을 지킬 수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수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이란 것은 가만히 유튜브만 보아도 먹을 수 있다. 샹그리아를 한 병 먹고 널브러져 있거나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들고 매장에 전세를 내고 앉아있어도 나이는 꼬박꼬박 먹는다. 칼로리는 없지만 지방처럼 여지없이 쌓인다.
새해를 고작 서른 번쯤 보내고 나서야 ‘쉽게 먹는 나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세상에 관심사가 줄어든다. 스무 살 때엔 ‘세상에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시간이 될 까?’했다. 한데 지금은 ‘세상에, 열정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가고 있다. 초겨울에 달린 몇 잎새처럼 간신히 매달린 취미가 있어서 다행이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에겐 쉽게 질려 보이는 것일 지라도.
한우물을 파고 싶어 하는 조금 나이 든 청년은 오늘도 몇 개의 취미를 하느라 분주하다. 혹시 여러 개를 오래 해도 한우물처럼 깊어지지 않을까? 그런 귀여운 욕심이 쉴 새 없이 먹어가는 나이에게 조금이나마 영양분을 주지 않을까?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소심하게 떠올린다. 아무래도, 루피가 되기는 글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