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아 좀 빠져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by 조승현

3년 정도 전까지 복싱을 했다. 원투 원투, 멋진 파이터처럼 보이길 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실력은 어중간했고 체력도 바닥이었다. 3분씩 3라운드 스파링을 뛰고 나면 사막을 횡단한 탐험가처럼 입이 말랐다. 그리곤 곧장 등을 대고 쓰러졌다. 누워서 보는 형광등이 최면을 일으켰다. 빙빙 돌며 정신을 육체와 분리시켰다. 조금 더 지나면 유체이탈도 가능했을 게 분명하다.


“인마, 어깨에 힘을 빼라고! ”


관장님은 늘 힘을 빼라고 소리치셨다. 힘을 빼고 주먹을 던지듯이 툭툭 내밀어야 체력 소모도 적고 펀치도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힘을 빼보지만 어디 맘처럼 쉽겠나. 치과 치료받을 때 혀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 어색한 것처럼 난해했다. 힘을 빼고 펀치를 내라니, 턱에 힘을 빼고 씹으라는 것과 비슷한 걸까? 그러다 힘이 잔뜩 든 어깨로 스파링을 하고 나면 다음날 관장님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상대에게 맞은 턱보다 어깨가 더 아팠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힘을 빼야 돼 인마. 알아?”

“아는데, 잘 안돼요”

“그래, 그게 잘됐으면 네가 프로를 했겠지 뭐”


운동을 배울 때마다 그 말은 두더지 게임처럼 곳곳에 등장했다. 탁구를 칠 때는 “팔에 힘을 빼세요!”, 테니스를 배울 때는 “힘 빼고 스윙을 허리로 하시라니까요!”, 수영을 할 때도 “어깨를 부드럽게 돌려야죠! 수영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놈에 힘 힘 힘! 정작 헬스장에서는 애타게 불러도 없던 힘이 빼야 하는 순간이 되면 어디서 그렇게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을 쓸 때였다. 도무지 힘을 뺄 수가 없다. 물론 글을 쓸 때 이두박근에 힘을 준다거나, 복근을 꽉 짜내며 글을 쓰진 않는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무지막지하게 내리치지도 않는다. 다만 잘 쓴 글처럼 보이고 싶어서 문장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늦은 밤 감성에 취해 쓴 글들이 보통 그랬다. 쓰고 나면 홀로 감탄하며 ‘대대로 남기겠어’ 해놓고는 다음날 ’이 오그라드는 글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하며 비통해했다. 세상의 진리를 담은 양 부담스러운 문장이었다. 누가 볼까 싶어 황급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날의 글들은 마치 어둠 같았다. 새벽이면 켜켜이 쌓였다가 동이 트는 순간 사라졌다. 감성을 뒤집어쓴 새벽, 진리를 아는 척하는 청년의 귀여운 과거로 포장될 수 있을까?

글이란 자고로 툭툭 쳐내는 쨉처럼 가볍고 산뜻해야 할 것이다. 주변을 빙빙 돌며 흐름을 이어가다 결정적인 순간에 어퍼컷을 날려야 좋은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제쯤 좋은 글들을 쓸 수 있을까. 언제쯤 힘을 뺄 수 있을까.


사랑도 그렇다. 매력을 드러내겠다며 있는 힘껏 자기 자랑을 하면 재수 없는 사람이 된다.

요리도 그렇다. 맛있는 요리를 하겠다며 좋은 재료를 있는 대로 쏟아부으면 비싼 잡탕이 된다.

설거지도 그렇다. 수세미질을 부드럽게 해야 프라이팬을 긁어놨다며 등짝 맞을 일이 없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관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언제쯤 가능할까? 그래, 그게 잘됐으면 내가 프로를 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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