ㄸㅅㅇ 전까지는
회는 맛이 없다. 이 말에 박차고 일어나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간장을 듬뿍 찍은 회에 소주 한잔의 행복을 모르다니, 가엾구먼 쯧쯧” 하고. 그러나 평양감사도 제가 싫다면 그만이라지 않았는가. 3부짜리 다이아 반지도 신부가 싫다면 잘빠진 은반지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회가 맛이 없다.
일단은 싱겁다. 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제철에 난 무를 한 덩이 씹는 게 더 달고 고소하다. 회는 심지어 비리다.
게다가 비싸다. 회는 날것을 그냥 썰어주는 것인데 어째서 양념에 조리장의 품과 손맛까지 들어간 생선 조림보다 비싼지 궁금하다. 회를 써는데 드는 인건비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일까? 날생선을 보관하는 관리비가 많이 드는 것일까. 어쩌면 회에 나오는 방대한 밑반찬은 많이 남겨먹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 아닐까?
회를 좋아하지 않게 된지는 십 년이 좀 넘었다. 그전까지는 회 킬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회를 좋아했다. 어릴 적엔 사촌 형과 대결하듯 회를 먹으며 50점을 넘게 먹었다고 으스댔다. 숨을 쉴 시간에 회를 입에 넣는 것이 더 행복했다. 언제나 문제의 시작은 욕심이다. 나는 그날 단단히 체했다. 먹은 회를 모두 뱃속에서 꺼내 놓고 나서야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 뒤로는 회가 잘 먹히지 않는다.
“어이구, 젓가락질을 권투선수 주먹보다 빠르게 해대니 그 꼴이 나지”
어머니는 메이웨더만큼 빠른 아들의 젓가락질을 칭찬하지 않았다. 대신 등을 몇 번 두드리며, 적당히 먹으라고 말한 자신의 예언을 다시 부각했다. 자기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사실 진짜로 떡이 생긴 적은 없었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면하는 정도가 가장 큰 혜택이었다. 그랬던 말이 체한 회를 가슴에 품고 나서야 조금 와 닿았다. 그래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뒤로 회와의 만남은 닭이나 돼지고기에 밀려 좀처럼 성사되지 않았다.
얼마 전 친구와 제주도를 여행했다. 비행기에 오르며 “제주도까지 갔는데 회 한 접시 해야겠지?” 하고 묻자 친구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도 회를 먹지 않는다. 침을 한 번 삼키더니, 결연한 듯 말했다. “그럼 한 번 먹어볼까?”. 회를 먹는 일은 흡사 중국에서 전갈 튀김을 먹거나, 필리핀에서 반쯤 자란 달걀을 쪄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의지가 필요했다.
“딱새우 회도 맛있다던데?”
“딱새우? 나 새우는 정말 좋아하는데!”
“나도!”
“딱새우다!!!”
무거웠던 메뉴 회담은 고귀한 딱새우의 등장으로 극적 타결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딱새우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직원이 딱새우를 자리로 갖다 주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캐비어를 받아 든 미식가처럼 흥분 상태가 됐다.
머리가 떼어지고 껍질이 반쯤 벗겨진 새우가 반달 모양으로 누워있었다. 영롱했다. 향을 스윽 음미했다. 초고추장은 찍지 않았다. 새우의 꼬리를 손잡이처럼 잡고 새우를 물었다. 슬러쉬를 빨대로 먹듯 세차게 빨아내자 새우살이 쏙 하고 빠져나왔다. 달달했다. 찰기 넘치는 새우살에 입에서 춤췄다. 그 맛은 놀라웠다. 비리지 않았고 제철 무보다 달았다. 양념된 조림보다 풍미가 깊었다. 이것은 회가 아니었다. 요리였다.
딱새우는 뭘 먹고 자란 걸까. 다른 새우들이 플랑크톤을 먹을 때 딱새우는 진주와 해초를 먹고 자랐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진주 같은 우윳빛 윤기와 살랑살랑 해초를 닮은 S라인을 설명할 수 없다. 새우가 새초롬하게 걸어가 우걱우걱 진주를 깨 먹는 이상한 상상을 한다. 앞을 바라보니 친구가 딱새우를 멸종시키고 있다. 잡생각을 치우고 함께 동조한다. 서두에 말한 말을 후회한다. 회는 맛있다.
참고로, 일가친척을 포함해 나의 친구 및 지인들 중 딱새우를 키우거나 판매를 하고 있는 사람이 없음을 밝힌다. 정말이다.